【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신회계기준인 ‘IFRS17’ 도입 후 보험사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불거지자 금융당국이 새로운 규제안을 내놨다. 그러나 해당 개편안이 당초 도입취지와는 맞지 않는 데다 향후 기업 재무신뢰도와 실적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개최된 제4차 보험개혁회의에서는 보험건전성 감독 강화 등 IFRS17 제도 개선 방안이 논의됐다.
핵심 안건은 무·저해지 상품(무·저해지 환급형 보험 상품)의 위험액 산출 방식을 변경하는 방안으로, 보험사의 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을 산출할 때 무·저해지 상품이 가진 위험을 더 크게 반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무·저해지 상품에 대한 회계처리 때 일반 보험 상품보다 더 깐깐한 잣대를 적용하게 되며, 관련 상품 판매 경쟁 과열을 막기 위한 사업비에 대한 감시도 강화된다. 적용 시점은 올해 말 결산부터다.
금융당국이 개선안을 내놓은 이유는 보험사들의 ‘실적 부풀리기’다. 현재 많은 보험사가 무·저해지 상품 해지율을 지나치게 높게 예측해 보험 계약 마진을 크게 잡는 방식으로 회계상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시각이다.
통상 해지율이 높을수록 보험사의 순자산 계상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해지율이 낮으면 그 반대다. 보험사들은 소비자가 낸 보험료를 처음에는 부채로 인식한다. 그러나 무·저해지 상품은 가입자가 중도 해지할 경우 납입 보험료를 돌려줄 필요가 없는 만큼 받은 보험료를 자본으로 인식하게 된다.
신회계기준인 IFRS17 도입 이후로 보험사들은 해지율을 자체 기준으로 정해 왔다. 이 대목에서 보험사가 단기 실적 개선을 위해 해지율을 높게 잡음으로써 가입자가 낸 보험료 중 자산으로 잡히는 부분을 크게 만들었다고 보는 셈이다. 무·저해지 상품 출시 증가 또한 실적 뻥튀기 배경의 하나로 지목된다.
이에 당국은 올해 말부터 일반 보험 상품과 무·저해지 상품의 위험을 나눠 산출하도록 했다. 무·저해지 상품에는 일반 보험 상품과 다른 해지율 기준을 적용하게 된다는 의미다. 무·저해지 상품 가입자가 해지를 미루거나 아예 해지하지 않을 확률이 보험사들의 예측보다 훨씬 높다는 인식에 따른 조치다.
해지 시 보험사 순자산이 늘어나는 무·저해지 상품에 대해서는 해지율을 40% 떨어뜨려 위험액을 계산하도록 했다. 이는 해지율이 과도하게 높게 잡히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1차 연도 최적 해지율의 60%만 적용하게 된다.
아울러 보험사들의 사업비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 비합리적 사업비 집행을 제재하는 내용도 논의됐다. 내년부터는 보험사들이 보험료·보험금·사업비를 포함하는 실제 현금 유출입에 대한 업무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보험사가 기초 서류에서 정한 사업비 한도 내에서 수수료가 지급되도록 기준을 마련했으며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제재를 추진한다.
당국은 올해 말 결산부터 보험사들이 보험 부채 현황을 세분화해 세부 현황과 변동, 최적 가정을 공시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계리·회계법인의 외부 검증에 대해선 감리 근거와 자료 제출 요구권을 신설해 부실 검증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부실 검증 시 벌칙 부과 조항을 신설해 외부 검증 책임 또한 강화한다.
보험업계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해당 개편안이 당초 신회계기준 도입취지와는 배치되는 데다 중소형사의 경우 재무건전성이 악화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 지난달 10개 손보사(삼성·DB·현대·KB·한화·롯데·NH·흥국·하나·MG)는 이례적으로 금융위에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개편에 반대하는 공동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회사마다 보유 계약과 종류 등 사정이 다른데도 일괄적인 해지율을 적용하는 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이는 자율성을 부여하는 IFRS17 도입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주장이 담겼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편안은 자율성을 보장하는 IFRS17의 대전제에 위배된다”며 “각 사마다 상품의 구조와 규모, 만기등이 모두 다른 상황인데 회계기준의 현실적인 반영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지급여력비율 악화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도 “회사마다 보유 계약의 종류와 시점들이 다른데 당연히 일률적 기준보다는 회사 상황에 맞춘 기준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대형사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중소형사의 경우 순익 급감과 재무건전성 악화 등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경재 전주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IFRS17 제도개선은 보험사 재무 건전성 강화를 위한 중요한 조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크다”며 “특히 자본확충 부담과 지급여력비율 저하에 따른 중소형사의 압박이 크고, 이는 보험료 인상과 영업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 당국은 재무건전성 개선과 자율성 보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보험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정부의 개입이 시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기업가치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문가 의견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회계 처리 기준 교체 등 정부의 잦은 개입은 보험사 재무신뢰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밸류업(기업가치제고)과도 역행하는 행보”라며 “회사의 재무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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