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결과와 승복 이슈를 언론들이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대통령중심제의 원형 국가이자 오래전 위대한 정치 관찰자 알렉시 드 토크빌이 칭송한 미국의 민주주의가 정녕 백척간두의 위험에 처하게 될까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진부하지만 틀림없는 '선거'의 결과에 대한 인정 여부가 미국에서 우려의 대상이 되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거가 꽃에 비유되는 것은 왜일까요. 현대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이자 대의제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자유주의 특질을 논외로 하면, 현대 민주주의는 곧 대의민주주의와 동의어가 될 것입니다. 대표를 뽑아서 통치하게 하고 책임을 지우고 묻는 '대표와 책임'이 작동 원리입니다. 자유롭게 경쟁하는 여러 정당이 주기적 선거로 선택받아 통치하는 체제라는 것입니다. 조직된 대안 세력으로서 자율적 결사체인 정당이 중요하고 일정 연령이 되면 누구라도 차별 없이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또한 절대적인 이유입니다.
민주주의(Democracy)를 데모(Demo/Demos. 민중 또는 다중)와 크라티아(kratia. 권력 또는 지배)의 합성 어원으로 보면 민중의 권력, 지배, 정부가 됩니다. 공직 추첨제를 시행한 그 옛날 아테네 민주정과 직결됩니다. 직접 통치가 아니라 대의 통치하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설명하는 데 이 개념이 무력한 까닭입니다. 동질적 소규모 도시국가에서, 그것도 노예와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만이 통치에 참여한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와, 모든 것이 이질적이고 사회 발전과 노동 분업이 심대한 대규모 현대국가의 대의민주주의는 전혀 다른 인류의 발명품일 뿐입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시민 주권과 정치적 평등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선출된 대표라는 매개자나 대행자에 의해서만 간접적으로 시민 주권을 실현해야 하는 대의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최장집은 책 『양손잡이 민주주의』에서 지적합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로 인정받는 이 정치학자는 국가의 크기, 이질성, 복잡성, 시민들의 생업 종사에 따른 여유 부재, 지식 부족 등을 근거로 현대 들어선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이 필요하게 된 점을 짚으면서 대의민주주의의 불가피성을 설명합니다. 직접민주주의를 못 해 대의민주주의가 불러들여진 게 아닙니다. 대의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우월하기에 선택된 과학인 것입니다.
'스스로가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E. E. 샤츠슈나이더)라는 민주주의 개념 규정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는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라,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혀옵니다. 왕정, 귀족정과 같은 단어 맥락에서 민주정 또는 민주제로 번역돼야 더 적절했을 민주주의에 이제 짐을 좀 덜어줬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민주정은 정체(政體)의 하나일 뿐이라고요. '…주의'로 번역되어 과잉 이념화한 민주주의를 아끼는 마음에서입니다. "국민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의)정부", 이 하나로 이념은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국민의 동의가 관건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박상훈, 정치의 발견 p.154 샤츠슈나이더의 민주주의 개념 정의 인용, 폴리테이아, 2011
2. 최장집 서복경 박찬표 박상훈, 양손잡이 민주주의 p.91-92 부분 인용, 후마니타스, 2017
3. 서병훈 김주성 임혁백 강정인 이화용 정호원 홍태영 오향미 김남국, 왜 대의민주주의인가, 이학사, 2011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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