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발전 시민단체들이 지방시대를 위한 정책적 대전환을 촉구했다. 윤석열정부 임기가 반환점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지방시대 선언’은 더딘 움직임만 보이고 있고 대신 국가불균형발전을 초래하는 수도권 규제완화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감을 보이면서 되레 국가균형발전이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윤석열정권 집권 초기, 수도권 개발을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수도권 규제의 빗장을 풀고 반도체 등 핵심산업을 살려야 한다며 대규모 수도권 투자유발정책을 제시하는 사이 비수도권·지방의 소멸 위기는 더욱 가중됐다는 얘기다. 지방을 살리겠다는 선언적 의지 표명에만 그칠 게 아니라 실행력이 담보된 실질적인 분권·균형발전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뜬구름 잡는 지방‧재정분권
균형발전을 촉구하는 강원·영남·호남·제주·충청권 시민사회단체와 국민주권·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한 개헌국민연대는 5일 오송 C&V센터에서 ‘윤석열 정부 전반기 지방시대 정책 추진 평가와 과제 토론회’를 열고 지방시대 정책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발전적 지향점을 모색했다.
토론회에서 송창석 ㈔자치분권연구소 이사장은 발제를 통해 정부의 미흡한 지방시대 공약 이행을 꼬집었다. 지방시대 견인을 위한 법·제도화엔 성과가 있었지만 지방분권 관련 공약 이행은 그 내용과 절차적 차원에서 낙제점이고 균형발전 정책은 상향적 기획특구제도 등 변화가 있었지만 모두 철학의 부재와 강력한 추진체계의 한계로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평가했다. 송 이사장은 “지방분권 관련 국정과제는 실행계획의 핵심이고 실천과제는 국정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수단이기 때문에 범정부적·통합적 조정과 점검이 필수인데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지방분권위원회를 지방시대위원회로 통합했지만 여전히 집행력과 실행력이 없는 대통령 자문위원회의 위상을 유지함으로써 위원회 운영의 한계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부총리급 정부기구로의 전환이 어렵다면 대통령실에 대통령의 핵심적 국정의제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분권균형수석실이나 수석비서관급 분권균형기획관리관이라도 운영해야 그나마 추진동력을 가질 수 있는데 지금은 정무수석실 내 지방시대비서관을 운영하는 게 전부”라며 “이는 대통령이 분권·균형발전에 대한 관심과 철학이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송 이사장은 이어 “정부의 지방시대 정책 이슈가 지역개발과 관련한 국책산업과 초광역지역연합·행정통합 등에 집중돼 자치분권과 재정분권이 국정운영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지적하면서 지방분권 국정과제 기획관리체계 미구축, 일방적인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연기, 악화되는 지방재정 상황과 재정분권 실종, 지방분권 개헌 논의 실종 등을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윤태섭 충북대 교수는 윤석열정부의 재정분권 국정과제와 지방재정 규모의 변화를 비교·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평가한 전반기 재정분권 추진 현황을 발제했다. 윤 교수는 발제를 통해 지방소비세율 인상을 통한 재정분권 추진과 관련해 “정확한 진단과 처방 없이 ‘지방 재정력 강화’라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국세 대비 지방세 비율 개선이 재정분권의 핵심 이슈화 돼 있는데 지방소비세율을 올린다고 해서 지자체의 세입이 마냥 늘어나진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곤 지방소비세 증가분을 지방교부세 감소분이 상쇄하는 결과가 초래돼 결과적으로 세입 감소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윤 교수의 분석이다. 세입 감소 방지를 위해 지역상생발전기금이나 지역소멸대응기금 등 재원을 마련해 배분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는 결국 국가 및 중앙행정기관에 대한 지방재정의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윤 교수는 부연했다. 이런 상황은 원래 목표로 했던 ‘재정분권을 통한 지역의 자율성·책임성 강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윤 교수의 근본적인 문제제기고 분권이 강화될수록 자치가 약화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게 핵심이라는 게 윤 교수의 처방이다.
윤 교수는 “작은 일을 하더라도 정책형성부터 재원 마련, 집행, 평가까지 온전히 지자체가 자율성과 채익멋을 갖고 수행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지금까지 재정분권은 국가가 해야 할 일 중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사무를 지자체에 넘긴 게 대부분이다. 지자체가 스스로 마련 가능한 재원(지방세)을 중심으로 인력을 운영해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법에 규정돼 있는 국가-광역-기초 간 사무 배분과 기능 배분에 대한 재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복합위기 시대, 균형발전 필수
초의수 신라대 교수는 ‘균형발전 정책 추진 평가와 과제’에 대한 발제를 통해 우리가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소개하면서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균형발전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 교수는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과 관련, 우선 문제인식부터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저출산·고령화, 생산인구 감소,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낮은 국민행복감 및 삶의 질, 수도권 일극체제를 포함한 양극화, 과잉경쟁교육체제, 낮은 생산성, 초격차기술 부족 등 대전환의 시대에 직면한 문제 해결에 대한 집중적이고 핵심적인 전략이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또 ‘지방시대’의 방향성에 대해선 문제 해결을 위한 성장 비전을 제시할 큰 그림이 없고 수도권 인구 50% 이하 유지 등 수도권 초집중화에 대한 문제해결 방법론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주요 정책들 역시 기회발전특구를 제외하면 기존 사업이나 유사사업이 많고 융합적이고 혁신적이면서 세련된 정책, 킬러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초 교수는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전문가 조사결과도 제시했다. 조사결과 정부의 지역정책 평가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법의 목적 및 지향점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수도권 집중 및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과 지방소멸, 수도권 집중 해소, 미래성장동력 확보 등 핵심의제를 통합해 추진할 수 있는 정책 추진체계도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초 교수는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K-테크노폴리스 조성, 지역균형발전 추진체계의 전면 쇄신, 지역생활 기반의 정책 마련, 메가시티 기반 구축, 지역인재댐 구축 및 지역고용 기반 강화, 지방대 육성 및 지역인재 역량 강화, 균형발전자치부 신설 등을 주문했다.
토론회 주최 단체는 이날 토론회에서 제시된 의견들을 바탕으로 성명을 내 지방시대를 위한 정책적 대전환에 나설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들은 “의지와 실행력이 부족한 윤석열정부 전반기 지방시대 정책 추진은 낙제점이다. 균형발전·지방분권 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개헌 추진은 국정운영 동력이 강한 정권 초기에 추진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윤석열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수도권 규제완화와 수도권 중심의 성장·개발 정책을 펼치며 균형발전·지방분권에 역주행하는 반(反)지방시대 정책을 펼침으로써 지방시대 정책에 대한 진정성과 의지·노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지방시대는 거창한 선언이나 정치적 수사로는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장기적 국가 플랜으로 매우 강력한 대통령의 의지와 구체적인 실행력을 담보해야만 한다.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과 저항이 예상되는 지방시대 정책의 구현은 촘촘한 로드맵과 지방정부와의 연대와 소통, 국민적 지지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역대 정권에서 경험적으로 검증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중앙·수도권 중심의 국정운영에서 벗어나 지방시대를 실질적으로 열 수 있도록 획기적으로 국정운영방향과 정책을 전환하고 국정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균형발전·지방분권 정책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또 주민자치 법제화, 자치경찰권 강화(이원화), 재정분권, 지방자치권 강화 등은 신속히 추진되지 못하고 있고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약을 후퇴·지연시킨 상황인 만큼 집권 후반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볼 수 있도록 정부가 약속한 지방시대 국정과제와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신속히 추진할 것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이들은 대통령 자문기구에 불과한 지방시대위원회를 부총리급의 총괄집행기구로 격상·강화하고 대통령실에 분권·균형수석실이나 분권·균형수석비서관을 신설해 통합적 균형발전·지방분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균형발전특별회계를 연 30조 원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고 수도권에 대한 균특회계 집행도 멈추는 한편 재정분권을 조속히 추진하고 지역대표형 상원제 도입 등을 포함한 균형발전·지방분권형 개헌에 나설 것도 촉구했다. 37년 전에 개정된 헌법으론 시대변화와 시대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만큼 지방분권 개헌안에 우리가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타개할 방향성을 담아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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