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부양 가능성' 계산 못 한 듯…결정적 증거에 꼬리 잡혀
범행 후에도 정상 출퇴근 등 '치밀한 증거인멸' 정황 수두룩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강태현 기자 = 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강에 유기한 현역 군 장교의 범행이 '치밀한 증거인멸'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덜미를 잡힌 것은 수면 위로 드러난 시신 때문이었다.
철거가 예정된 건물에서 시신을 훼손하고, 지리가 밝은 10여년 전 근무지를 찾아 시신을 유기하고, 피해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생활반응까지 꾸며내며 완전범죄를 꿈꿨으나 '시체가 곧 증거'인 살인사건에서 부패한 시신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예측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그 꼬리를 드러냈다.
5일 강원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피의자 A(38)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3시께 부대 주차장 내 자신의 차량에서 B(33)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격분해 목을 졸라 살해했다.
피해자의 시신에 옷가지를 덮어놓고는 차량을 빠져나온 뒤 태연히 근무를 이어간 A씨는 퇴근 뒤 오후 9시께 부대 인근 건물에서 시신을 훼손했다.
이미 철거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이었으나 직접 준비해온 도구들로 혈흔 등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경찰이 A씨의 검거 이후 압수수색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옹벽과 바닥 등이 철거된 상태였다.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증거를 인멸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던 셈이다.
시신을 훼손한 A씨가 유기 장소로 택한 곳은 10여년 전 자신이 근무한 경험이 있던 강원 화천군이었다. A씨는 이튿날인 26일 오후 9시 40분께 화천 북한강변에 시신과 함께 범행 도구를 유기했다.
유기할 때는 시신이 금방 떠오르지 않도록 시신을 담은 봉투에 돌덩이를 넣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27일에는 B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부대 측에 "휴가 처리해달라"며 결근을 통보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에도 B씨의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면서 휴대전화를 껐다 켜는 수법으로 생활반응이 있는 것처럼 꾸몄다. 심지어 B씨의 가족과 지인에게도 메시지를 보내며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
이 같은 행동을 두고 표창원 프로파일러는 "두뇌 회전이 빠르고 전략을 세우거나 합리적 판단에 능한 직업적 특성을 가진 사람이다 보니 정신적 역량을 총동원해 증거 인멸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B씨가 생존해있는 것처럼 꾸민 A씨는 28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산하 부대로 전근 발령을 받은 뒤에도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며 태연히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A씨에게 이달 2일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시신 중 일부가 물에 떠오른 것이다.
시신을 담은 봉투에 돌덩이까지 넣고 테이프로 밀봉하는 치밀함까지 보였지만, 시신이 부패하면서 가스가 차는 데다 물까지 새어 들어갈 경우 생기는 화학반응과 삼투압 현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시신을 땅속에 묻지 않고 수면 아래로 감추려 했던 A씨의 '완전범죄' 계획이 산산이 조각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A씨는 시신이 발견된 날은 물론 검거 당일까지도 B씨의 휴대전화를 쓰며 '1인 2역'을 자행해 주변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었다.
B씨의 가족에게도 "어디 가서 머리를 식히고 오겠다"는 취지로 말했기에 만일 시신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뒤늦게 실종사건으로서 수사가 시작될 수밖에 없었고, A씨가 용의선상에 오르더라도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A씨의 자백 없이는 장기 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살인사건에 있어 시체는 가장 강력한 '스모킹 건'인 만큼 행여 시신이 담긴 봉투가 강물을 따라 유실되거나 수중에서 부패해 사라졌다면 사건의 실체는 그대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신을 발견한 경찰은 곧장 지문 감식과 디옥시리보핵산(DNA) 감정을 통해 B씨임을 파악, B씨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폐쇄회로(CC)TV 분석 끝에 시신을 발견한 지 불과 하루 만인 지난 3일 오후 7시 12분께 서울 강남구 일원역 지하도에서 A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혐의로 A씨를 구속한 경찰은 정확한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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