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대통령이 지금의 저출생 문제를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했을 때 뭐가 바뀌어도 제대로 바뀔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 내년도 예산안 뚜껑을 열어보니 중장기적 대책이 필요한 저출생 예산은 '빵 원'이고, 그나마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의 예산은 여기 저기에서 꿔오고 빼오고 돌려막기 하는 수준이다. 나라가 돈을 안 쓰고 무슨 수로 대책을 세우고 어떻게 반전을 일으키겠다는 걸까?
먼저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육아휴직 급여 인상안을 보자. 표면적으로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지급되는 급여가 높아지며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인상분은 국가 예산이 아닌 기존 고용보험기금에서 가져온다. 고용보험기금은 사업자와 노동자들이 꾸준히 납부해온 보험료로 구성된 재원이다. 이 기금은 원래 실업급여나 취업 지원 같은 본래의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재원 마련 대신 기존 기금에 손을 대는 방식으로 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결국 이는 고용보험 재정 건전성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는 고용보험제도의 안정성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영유아 무상보육과 유보통합 관련 예산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들 정책의 시행 목적은 취학 전 아동이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공평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또한 국가가 부담해야 할 예산이 지자체로 떠넘겨졌다는 점이다. 중앙정부가 재정을 뒷받침하지 않고 지자체의 예산에서 이 비용을 충당하라는 방식인데, 지역마다 재정 상황이 다르다 보니 부유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의 보육 격차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중앙정부가 예산을 절감하는 데는 유리할 수 있지만, 그만큼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꼴이다. 국가 차원의 문제가 지역 차원의 문제로 전가될 때, 정작 지역에 사는 시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출생 문제는 단기적이고 부분적인 예산 조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재정 투입과 함께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문화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육아와 출산이 부모의 경제적 부담과 직결되는 구조에서는 일시적인 지원책으로는 인구 감소의 흐름을 반전시키기 어렵다. 안정적인 육아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재정 정책과 사회적 지원 체계가 필요한데, 현재와 같은 ‘모든 역량 총동원’ 구호는 허상에 가깝다.
결국 진정한 ‘저출생 반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호가 아닌 실제 예산을 통해 국가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 육아휴직 급여 인상을 위한 실질적 재원 마련, 지자체가 아닌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고 무상보육 예산을 확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는 저출생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며, 장기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투자일 것이다. 잊지 마시라, 사랑은 연필로 써야 알고, 정부의 정책 의지는 말이 아닌 돈을 써야 알 수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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