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두 건의 재판 선고가 11월로 예정된 가운데 여야가 법원 구애에 나서고 있다. 법조계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9년 만에 사법부 예산 비중 확대를 추진하는 한편 더불어민주당의 대규모 장외 집회를 두고 ‘입법 권력을 사유화해 정부와 사법부를 겁박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사법부를 겨냥한 공세를 멈추는 한편, 국정감사 중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에게 “법관 출신 주제에”라고 발언한 김우영 의원이 당직에서 사퇴했다.
국민의힘, 9년 만에 사법부 예산 확충
정부‧여당은 9년 만에 사법부 예산을 확대했다. 4일 정부‧여당에 따르면 내년도 사법부 예산은 올해보다 1388억 원 늘어난 2조3126억 원으로, 전체 국가 예산안 677조 4000억 원의 0.34%를 차지했다.
그간 국가 전체 예산 대비 사법부 예산 비중은 2016년 이후 올해까지 감소 추세였다. 때문에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법부 예산은 매년 삭감된 것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돼 왔었다.
특히 그간 이 대표 1심 선고를 앞두고 사법부에 재판 지연 해소를 강하게 요구했던 여당은 법원의 ‘초과근무 수당’ 등 인건비 증액을 편성해 눈길을 끌고 있다.
내년도 사법부 초과근무 수당은 올해 492억 원보다 206억 원 늘어난 698억 원인데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사법부에 ‘당근’을 준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선거법 사건은 기소 이후 6개월 이내 1심을 선고하도록 하는 강행 규정이 있지만, 이 대표의 선거법 재판 1심 선고는 2022년 9월 8일 기소 이후 2년 2개월이 지난 오는 15일 1심 선고 예정이다.
여당은 사법부의 예산 확대와 함께, 민주당이 대규모 장외집회에 나선 것을 두고 사법부를 압박하려는 속셈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국회에서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어 “입법 권력을 사유화해 정부와 사법부를 겁박하고 삼권분립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반헌법적 불법적 행태, 당장 멈추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앞서 김혜란 대변인은 지난 2일 논평을 통해 “전국에 총동원령까지 내려가며 머릿수로 위력을 과시해 국정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이재명 무죄’라는 여론을 조성해 사법부를 압박하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집회를 두고 ‘사법부의 판단도 대중의 여론을 감안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며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라면서 “특검은 그저 핑계이자 수단일 뿐이고 목적은 오롯이 ‘이재명 방탄’임을 이제 온 국민이 잘 알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김 대변인은 “법 앞에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더욱이 거대야당의 당 대표라는 지위가 범죄혐의자의 방탄 목적으로 활용될 수는 없다”라면서 “사법부는 이러한 무도한 시도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법관으로의 양심에 의한 판결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법관주제에’ 김우영 사퇴…법원 국감 조기 산회
이처럼 여당이 예산확대와 이 대표 재판 생중계를 요청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한층 적극적으로 ‘사법부 구애’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31일 김우영 민주당 의원이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직을 사퇴했다. 김 의원은 SNS에 “저의 순간적 감정으로 인해 당과 대표에게 큰 누를 끼쳤다. 일선의 고된 법정에서 법의 양심에 충실하신 모든 법관께도 사죄 드린다”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도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은 법관 출신으로 법의 양심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둬야 할 공직자였지만, 부위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민주주의 다수결 원리를 부정하고 위법적인 이사 선임을 강행함으로써 방송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정신을 훼손하고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렸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수많은 공직자를 봐왔지만 김 방통위원장 직무대행같이 거칠고 위협적인 언사를 일삼는 자를 본 적이 없었기에 저런 사람이 법관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라며 “그런 잠재적인 의식이 이번 국감 때 ‘법관 출신 주제에’라는 말로 잘못 튀어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김 직무대행은 지난 24일 열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종합 국정감사에서 정회 중 방송문화진흥회 직원이 쓰러져 관계자들의 응급처치를 받자 “XX, 사람을 죽이네 죽여”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민주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사과를 촉구했고 김 의원은 김 직무대행과 언쟁하는 과정에서 “임마 이 자식아, 법관 출신 주제에” “이 XX야”라고 맞받아치며 고성이 오갔다.
그러자 이 대표는 지난 달 30일 김 의원에게 ‘엄중 경고’ 조치를 취했고, 하루 뒤 김 의원은 당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국감 도중 빚어진 막말 논란은 김 의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장경태 의원은 ‘국회의원이 김영철 검사의 아랫도리를 비호한다’고 했고, 양문석 의원은 ‘청와대를 기생집으로 만들어 놨나’ 등의 막말을 내뱉었다. 이런 막말은 놔두고 김 의원에게만 이 대표가 ‘엄중경고를 ’내린 데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1심 선고를 앞두고 사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연주 국민의힘 대변인도 지난 1일 SNS에 “이 대표는 15일과 25일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김 의원이 '법관 주제에'라는 발언이 판사들의 심기를 건드려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싶어 사과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이 법사위 국감에서 다른 기관들보다 법원 국감을 조기 산회시킨 것도 사법부를 의식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다른 피감기관 국정감사 마감 시간을 살펴보면 서울고등검찰청은 23시 16분, 법무부는 23시 25분 등 자정 가까이까지 진행됐던 것과 달리, 대법원은 22시 16분, 서울고등법원은 19시 09분에 종료 됐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민주당이 화력을 한껏 절제해 사법부를 향해 정중한 질의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또한 민주당은 ‘법원 숙원’으로 꼽히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지난 8월 ‘친명’ 김용민 의원 명의로 대표 발의한 뒤 9월 본회의에서 앞장 서 처리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판사 임용을 위한 법조 최소 경력을 10년→5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으로 지난 21대 국회에서 동일한 법안을 민주당이 부결시켰던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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