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생각보다 안 심심한데"… 문명단절 48시간, 세상은 그대로

[Z시세] "생각보다 안 심심한데"… 문명단절 48시간, 세상은 그대로

머니S 2024-11-05 11:34: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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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 사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유행하는 '디지털 디톡스'를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사진=김영훈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 사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유행하는 '디지털 디톡스'를 기자가 직접 체험해봤다. /사진=김영훈 기자
최근 Z세대 사이에서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을 잠시 중단하는 '디지털 디톡스'가 유행했다.

방법은 다양하다. 하루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서로 공유하는 일명 '스크린 타임' 챌린지가 유행했고 스마트폰을 넣으면 일정 시간 동안 잠금이 설정돼 꺼낼 수 없는 '금욕 상자' 상품도 등장했다. 스마트폰을 반납해야 입장할 수 있는 카페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현대인에게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스마트폰이지만 이들은 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디지털 세상과 멀어지려고 하는걸까. 기자 역시 지난 주말 디지털 디톡스를 직접 체험해봤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기사 속 모든 사진은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했다.

SNS·유튜브 없는 공허한 아침

스마트폰 전원을 끈 후 잠시 서랍 속에 넣어놓기로 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해 화질이 예스럽다. /사진=김영훈 기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에 놓인 스마트폰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허공을 더듬었고 그제야 스마트폰이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허전한 손끝의 감각. 아침에 일어나 카카오톡, 인스타그램을 확인하던 루틴이 멈췄다. 유튜브를 틀지 않은 채 하는 샤워도 오랜만이었다. 스마트폰이 주는 정보의 홍수가 사라지자 마음 한 켠이 공허했다.

쉬지 않고 2시간이나 책을 읽었다… 군대 당직 시절 이후로 처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언젠간 읽어야지' 다짐만 했던 책을 드디어 펼치게 됐다. 사진은 지난해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 당시 구매했지만 1년 이상 읽지 않은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사진=김영훈 기자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언젠간 읽어야지' 다짐만 했던 책을 드디어 펼치게 됐다. 사진은 지난해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 당시 구매했지만 1년 이상 읽지 않은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사진=김영훈 기자
유튜브·넷플릭스·게임·SNS를 할 수 없으니 책을 읽었다. 평소 책을 읽을 때 스마트폰 알림이 뜰 때마다 독서를 중단하고 확인하곤 했다. 가끔은 책 읽는 내 모습이 기특해 책 사진을 SNS에 업로드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은 오롯이 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평소 30분 동안 겨우 몇 페이지 읽던 책을 2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반 이상 읽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2시간 이상 독서를 한 건 군복무 이후 처음이었다.

멀티태스킹이 아닌 '책 읽기' 하나에만 집중하자 내용을 더 심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오랜만에 스마트폰 속 세상에서 완전히 단절된 채 눈 앞의 현실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조명·온도·습도… 주변을 오롯히 느끼며 산책하다

무작정 나와 한강을 걸었다. 사진은 이날 어르신과 대화했던 야외 운동 기구 사용 구역. /사진=김영훈 기자 무작정 나와 한강을 걸었다. 사진은 이날 어르신과 대화했던 야외 운동 기구 사용 구역. /사진=김영훈 기자
오후에는 가볍게 동네를 걸었다. 가벼운 산책이었지만 스마트폰이 없다 보니 시선은 주변 환경과 온전히 연결됐다. 평소 산책 중에는 음악을 듣거나 SNS로 연락을 주고받느라 주변 풍경에 집중하는 일이 드물었다. 이날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바람의 온도, 공기의 냄새, 주변 이웃의 존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과 이어폰 없이 걸은 탓인지 처음 본 이웃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야외 운동 기구를 이용하던 한 어르신이 날이 풀려 저녁엔 쌀쌀하다며 외투를 가지고 나올 것을 조언해줬다. 감사하다고 답한 후 이곳에 자주 산책 나오시냐고 되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대화를 몇 분간 이어갔고 이후 다시 걸었다.

정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모든 연락·정보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모든 연락·정보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저녁이 되자 카톡·인스타그램·유튜브·이메일 등 연락과 현재 이슈 뉴스를 확인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다. 스마트폰이 없어 정보에서 멀어진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그동안 정보를 놓칠까 두려워하며 스마트폰에 집착했다. 집착은 종종 현실과 나를 분리시키기도 했다.

하루 정도 정보의 바깥에서 있어도 큰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끊임없이 접속하고 무언가를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그동안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숙면을 취했다… 다만 이유는 불분명

스마트폰의 밝은 빛은 숙면에 필요한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한다. 특히 드라마·영화·게임과 같은 화려한 화면이 주는 자극은 뇌에 오래 머물러 수면 장애를 유발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스마트폰의 밝은 빛은 숙면에 필요한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한다. 특히 드라마·영화·게임과 같은 화려한 화면이 주는 자극은 뇌에 오래 머물러 수면 장애를 유발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평소에는 잠에 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취침 전 잘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보다가 저절로 눈이 감기곤 했다. 새벽 늦게까지 화면을 보다보면 취침 시간이 4시간이 채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언제 잠에 드는지도 모르고 잠드니 얕은 잠을 취했다.

이날은 밤 11시가 되기 전에 일찍 침대에 누웠다. 평소라면 유튜브로 '침착맨 삼국지'라도 틀어놓고 라디오처럼 들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양을 세기 시작했다. 매일 늦은 새벽에 자다보니 잠에 드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40분 가까이 잠이 들지 못하며 뒤척였지만 이날은 자정이 되기 전 잠에 빠졌다.

놀랍게도 밤 동안 한 번도 잠에서 깨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정말 스마트폰을 하지 않은 덕인지 혹은 낮에 안하던 독서와 산책을 하느라 뇌와 몸이 피곤했기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스마트폰의 밝은 빛이 숙면에 중요한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OTT, 게임같이 화려한 빛이 많은 경우엔 그 자극이 눈을 감아도 뇌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아 수면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화면 속 세상에서 나오니… 그제야 보이는 다채로운 '현실'

디지털 디톡스는 색이 바랬던 일상의 평범한 장면을 다시 선명하게 채색해주는 시간 같았다. 사진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청계천 다리 밑 어사화를 쓴 선비 미니어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드니 비로소 보였다. /사진=김영훈 기자 디지털 디톡스는 색이 바랬던 일상의 평범한 장면을 다시 선명하게 채색해주는 시간 같았다. 사진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청계천 다리 밑 어사화를 쓴 선비 미니어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드니 비로소 보였다. /사진=김영훈 기자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생각보다 안 심심하네'였다.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곧 자극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할 일은 많았다. 미뤄둔 집안일도 많았고 동네를 걸을 때도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많았다. 오히려 심심하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기도 했다. 정보가 아닌 경험에 초점을 맞추자 더 많은 자극을 느낄 수 있었다.

디지털 세계는 우리를 빠르게 몰아간다. 우리는 그 속도에 밀려 종종 지금 이 순간을 잃어버리곤 한다. 스마트폰 없이 지내면 현재에 더 깊이 머물 수 있다.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는 순간 내가 머무는 현재의 밀도는 훨씬 높아진다.

'스마트폰 중독' 미성년자 더 취약… '현실'과 '디지털' 사이 균형을 찾아야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실시한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1명(23.1%)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소년(만 10~19세)의 경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40.1%로 가장 높았다.

이승엽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가톨릭의대 은평성모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스마트폰 사용으로) 전두엽 기능이 방해를 받아 주의집중력·충동성·우울·불안·수면 등의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디지털 디톡스가 과도한 도파민 분비를 막아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달은 20대 후반까지 이뤄지므로 되도록이면 자녀의 스마트폰 구매를 늦추고 보유 시 사용에 대한 규칙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에릭 슈미트 구글 전 회장은 12년 전 보스턴대 졸업식 축사에서 "인생은 모니터 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며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고 조언했다. 당시 IT 산업의 정점에 서 있던 인물조차도 일정 시간 동안의 '디지털 디톡스'를 가질 것을 강조했다. 첨단 기술의 편리함도 분명 중요하지만 '현실'과 '디지털'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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