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퇴직연금 계좌를 타 사업자로 이전하려면 기존 상품의 팔거나 해지하고 현금을 돌려받은 뒤 새 상품에 가입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이에 따른 중도해지 비용, 펀드 환매 후 재매수 과정에서 금융시장 상황 변화로 인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금융사를 바꾸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에 정부가 기존 운용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그대로 갈아탈 수 있도록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다. 갈아타기가 가능한 상품은 신탁계약 형태의 원리금 보장상품, 공모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이다.
겉으로 보면 무척 편리한 제도지만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같은 유형의 상품으로만 이전이 가능하다. 예컨대 확정기여(DC)형에 가입했다면 타 금융사 DC형으로, 확정급여(DB)형은 DB형으로, 개인형퇴직연금(IRP)은 IRP로만 갈아탈 수 있다. DC형은 사용자(기업)와 계약된 퇴직연금 사업자(금융회사) 사이에서만 이전할 수 있다. 만약 우리 회사가 A은행하고만 DC형 계약이 돼 있다면 가입자가 B 증권사로 옮기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아울러 가입자가 갈아타기가 가능한 상품을 보유했어도 옮겨 타려는 금융회사가 해당 상품을 취급하고 있어야 이전이 가능하다. 현재 모든 퇴직연금 사업자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실물이전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 지연 등의 이유로 광주·iM은행, BNK부산·경남은행, 삼성생명, 하나증권, iM증권은 내년 4월까지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주식, 주가연계증권(ELS),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영제도) 등은 실물이전을 할 수 없다. 보험사는 취급 상품 대다수가 이번 실물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사실상 제외됐다.
실물이전에 대한 여러 한계와 난관은 차치하고 금융권에선 자금 유치를 위한 거센 신경전이 나타난다. 대외적으로 은행은 안정성을 내세우며 자금 수성에 나섰고, 증권사는 수익성을 무기로 공세에 한창이다. 그러나 물밑에선 자금 유출·입과 관련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실물이전과 관련한 전산적 준비가 다 됐음에도 은행 쪽에서는 자금을 넘기지 않으려 천천히 업무를 진행하며 미적대고 있다"며 "한 시중은행은 하루에 10건 정도만 실물이전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운 걸로 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은 일부 실물이전 지체 현상은 병목일 뿐이라며 펄쩍 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반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모근 금융사가 과부하가 걸린 건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실물이전 신청 가입자에게 이·수관 확인 절차를 진행해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는 것이 원칙으로, 고의적인 지연을 언급하기는 이른 시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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