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최지웅 기자] "삼성전자 조직 전체가 침몰하는 배인 것 같다. (기사를 보면) 전현직 임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왜 개선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삼성전자 직원이 남긴 글이다. 직급과 소속을 특정하기 어려운 한 직원의 주관적인 의견을 담은 글이기에 100% 신뢰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사안도 아니다. 삼성전자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과 우려를 표출하는 글들이 지속적으로 쏟아지고 있어서다. 보신주의에 물든 나태한 조직문화가 '삼성 위기설'에 불을 지피는 데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무사안일·보신주의 만연
재계에 따르면 삼성 내부적으로 도전과 혁신을 억제하는 보신주의가 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혁신을 이루기 위한 과감한 도전보다 현 상황을 유지하려는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한 탓이다.
실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토론하던 조직문화는 본연의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실무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져도 윗선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잘라내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괜히 고집부리다가 상사의 심기를 건드려 조직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 문화가 보신주의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에 근무 중인 한 엔지니어는 "중간관리자나 임원급 중 상당수가 지난 10년간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데 급급했다"며 "자연스럽게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문화가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요즘 임원들은 사인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며 "엔지니어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데다 팀장(임원급)이 정해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하삼하' '삼무원' 조롱 섞인 신조어 불명예
경쟁사 대비 미흡한 성과 보상도 근로 의욕을 꺾고 몸을 사리는 보신주의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딜사이트경제TV가 35명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삼성의 성과 보상 체계가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약 94.3%가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중 '일정 부분 개선 필요'가 60%, '전면 개편 필요'가 34.3%를 차지했다. '충분하다'는 답변은 5.7%에 그쳤다.
성과 보상에 불만을 느끼는 삼성 임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인력 유출도 심각해지고 있다. 급기야 '하삼하'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하삼하는 SK하이닉스에서 삼성전자로, 또다시 SK하이닉스로 이직하는 직원을 일컫는다. 기존에는 SK하이닉스에서 삼성전자로 이직을 희망하는 '하삼'이 압도적이었다.
하삼하와 더불어 '삼무원'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난무할 정도로 삼성의 위상은 예년보다 약해진 상황이다. 삼무원은 '삼성'과 '공무원'을 합친 신조어로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삼성 직원들을 지칭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긍심 강하고 진취적인 삼성맨이 삼무원으로 전락한 게 작금의 현실"이라며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조직 문화와 경직된 의사 결정 구조가 기술 혁신을 가로막으면서 위기를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분위기 바꿀 조직 개편 임박
삼성 내부에서도 느슨해진 조직문화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일 열린 삼성전자 창립 55주년 기념식에서 "과거 성과에 안주해 승부 근성과 절실함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 미래보다는 현실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경영진부터 냉철하게 되돌아보겠다”고 밝혔다.
이어 "변화 없이는 아무런 혁신도, 성장도 만들 수 없다"며 "변화와 쇄신을 통해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강건한 조직을 만들자"고 당부했다.
삼성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도 올해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이례적으로 반성문을 내며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약속했다. 전 부회장은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를 재건하겠다"며 "현장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대로 드러내 치열하게 토론해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 전반에 퍼진 위기설을 삼성 수뇌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삼성이 빠르면 이번 주 내로 조직개편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위기설의 진원지인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을 중심으로 쇄신 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전 부회장이 반성문을 통해 밝힌 것처럼 삼성은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된 인력을 메모리사업부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사장단 인사도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된다.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 LSI를 포함한 모든 사업부장을 동시에 교체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삼성이 이 같은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으로 그룹 내부에 만연한 보신주의를 타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딜사이트경제TV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다수 전문가들이 삼성 조직문화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삼성 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으로 '경영진의 현실 인지' '속도감 있는 인적 쇄신' '핵심사업에 집중하고 경쟁력 없는 사업 축소'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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