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보도와 관련해 "북한과 무엇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과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파병 지적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인데, 사실상 북한군 파병을 인정한 셈이다. 러시아는 그 전날까지만 해도 이를 부인했다.
일주일 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와 비슷한 뉘앙스를 풍겼다. 지난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무부에서 열린 ‘북러 전략적 대화'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만난 그는 “러시아와 북한 군과의 특수서비스(안보분야) 사이에 매우 긴밀한 관계가 구축됐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하는 북한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최선희 외무상은 "러시아가 푸틴 대통령의 현명한 영도 아래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승리의 그날까지 언제나 러시아 동지들과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은 앞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제6차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에서 "러시아 쿠르스크에 북한군 8000명이 배치돼 훈련받고 있으며 수일 내 전투에 투입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의 러-우전쟁 개입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북한군 파병은 곧 제3국의 전쟁 개입으로, 확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북한군 파병에 대한 러시아의 대가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단순히 전쟁무기를 판매하는 것과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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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2000달러?…1년이면 2.4억달러
한국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3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군 규모가 오는 12월까지 총 1만여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북한군이 파병에 대한 대가로 1인당 월 2000달러(약 277만원)가량 받는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북한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엄청난 돈이다. 북한뿐 아니라 한국의 최저임금 (1500달러∙ 206만원)보다도 큰 액수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의 약 60분의 1(1.7%)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북한의 1인당 GNI를 한 달 치로 환산하면 13만2400원 수준인데 이 돈의 스무배가 넘는 액수를 러시아 파병 북한군이 월급으로 받는다 것이다.
한국 국정원의 발표대로 1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북한은 매월 2000만 달러(약 274억원), 1년으로 계산하면 2.4억 달러(약 3280억원)를 러시아로부터 받는다. 쉽게 말해, 북한에게 또다른 외화벌이가 생긴 셈이다.
앞서 독일 등 서방 매체들은 러시아에 파병된 외국인 용병의 월급이 대체로 2000달러 수준이라며, 북한군도 이와 비슷한 월급을 받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문제는 이 돈이 파병된 북한 군인들의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상 북한의 해외 파견 근로자들은 임금의 10%만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나머지는 모두 충성자금 명목으로 북한 조선노동당으로 입금된다. 전문가들은 파병 군인들의 월급이 김정은의 리더십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은 BBC에 “요즘 북한 체제가 불안정하다,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진다 등의 얘기들을 하는데, 그런 주민들을 달래기 위한 부분에 있어서 통치 자금으로 쓸 수 있는 여력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간이나마 주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물자를 사올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그 돈이 민생 경제(1경제)로 가지 않고 군수경제(2경제)나 김씨일가의 통치자금(3경제)로 간다면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자금이 식량, 생필품 구매 등 순수 민생 경제를 위하 사용된다면 좋겠지만, 핵 프로그램이나 WMD(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비롯해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금이 사용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북한 경제 전문가는 “파병 군인들에게 월급으로 현금을 준다면 당연히 러시아 정부가 북한 당국에 직접 송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또다른 현금이 들어온다면 북한 경제는 물론 군사적 측면에서 의미가 클 것”이라며 “중국과의 관계도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북러 간 오가는 것이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돈이 목적이 아냐'… 그렇다면 왜?
여기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단순히 외화벌이를 위해 파병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돈은 ‘부차적’이라는 얘기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임수호 책임연구위원은 “파병은 획기적인 경제 돌파구가 될 수 없다”며 2.4억 달러 자체가 북한 경제에 크게 영향을 주는 규모는 아니라고 말했다. 1년에 2.4억 달러를 벌겠다고 침략군(러시아)의 공동 악의 축이 되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북한이 사이버 해킹 몇 번 더 하면 2.4억 달러 정도는 쉽게 벌 수 있다. 북한이 정말 원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즉 러시아가 가진 첨단 군사 기술이다. 결국 그것을 받아내기 위해 북한도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러려면 참전을 선택해야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히 포탄 등 무기를 제공하는 정도로는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전했다.
실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이 지난 2017~2023년까지 가상화폐 관련 업체들을 상대로 해킹 공격을 벌여 탈취한 금액이 미화 30억 달러(약4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대북제재위는 올 3월 20일(현지 시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공개하며 “북한이 악의적 사이버 활동으로 전체 외화 수입의 50%를 창출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를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자금의 40%를 충당했다고 평가했다.
최강 원장도 “파병을 했을 경우 러사이로부터 평가받는 부분이 더 컸을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선 필요한 군사기술을 지원 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파병을 결정했는데 돈까지 준다고 하니 1석2조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쯤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러시아가 파병군인의 월급 명목으로 북한 당국에 현금을 보낸다면 달러로 보낼까, 루블화로 보낼까, 아니면 위안화로 보낼까?
임수호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에서 대외 무역 분야에 종사하던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국가 간 거래는 무조건 달러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가치가 떨어진 러시아 루블화는 북한에서 안 받을 것이고, 중국과 잘 이야기해서 위안화로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현금을 받을 경우”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어 “북한이 원하는 첫번째는 군사 기술, 두 번째는 자본재, 세 번째가 돈”이라며 “파병군인 월급을 현금 대신 현물로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유엔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 정제유 50만 배럴 외에는 전부 밀수를 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러시아가 싸게 주거나 공짜로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북러를 오가는 컨테이너 선박들이 상당하지만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북제재로 설비 자재와 부품 등의 자본재 역시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렵다”며 “러시아산 밀가루, 러시아산 정재유 등이 일부 들어가겠지만, 정확히 무엇이 얼마나 북한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전쟁이 끝나면 북한은 전쟁 책임을 같이 져야 하는데 2.4억 달러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분명 다른 것이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에 맞서는 '상임이사국' 러시아… 국제질서 위협
한편 북한군 파병 문제에 대해 사실상 침묵을 이어오던 중국이 처음으로 “조러(북러) 양자 관계 발전은 그들 자신의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한 병력 이슈에 대한 중국의 침묵에 놀랐다’고 말한 데 대한 중국측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조러(북러) 양자 교류·협력의 구체적 상황을 알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말하는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라는 점이다.
유엔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국제정치 질서이자 국제사회가 유지되는 근간이다. 유엔 회원국은193개국으로, 국제사회 여러 국가들과 경제∙외교 등 다양한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유엔 가입은 필수로 여겨진다.
그리고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국제 평화와 안전 보장을 위해 설립된 유엔의 실질적인 핵심 기관이다. 상임이사국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지난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감행했다. 이 중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지만 ‘이는 그저 그들 일’이라며 나몰라라 하는 상황.
이에 대해 정은숙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은 “21세기에 맞지 않는 일들이 벌이지고 있다”며 우려했다. 특히 “북러 군사 밀착 그리고 북한군 파병은 국제질서와 안정성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축적된 국제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유엔이 북한의 수차례 핵실험 이후 매우 정교하고 촘촘한 경제 제재에 들어갔는데,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며 북한산 무기를 사들이고 북한 병력을 개입시키고 그 대가로 현금까지 보내는 현 상황이 결국 러시아가 유엔 차원에서 결정된 대북제재를 무효화 시키는 꼴이라는 것.
정 연구위원은 “비핵화 정신을 지켜야 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그 책임과 의미를 지닌 러시아가, 회원국 중 다른 국가가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하면 규탄해야 할 러시아가 지금 북한의 아주 강력한 방패가 되어 주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에서 룰을 만드는 역할은 결국 유엔 안보리가 가장 정통성이 있는데 지금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안보리의 정통성이 마비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무기를 팔아서 돈을 받는 것과 병력을 보내서 돈을 받는 것은 굉장히 다른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우리의 안보와 국제질서가 맞물려가고 있는 만큼 관련 부분을 굉장히 섬세하게 모니터링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이와 관련해 “북한이 파병까지 한 만큼 러시아는 북한이 원하는 것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그것이 첨단 무기나 핵 기술일 경우 한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관련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군 파병의 위험성을 평가해달라는 BBC 질의에 “러-우 전쟁에 파병한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이는 유엔의 설립 정신 자체를 뿌리채 흔드는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아울러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유엔 헌장에서 금지하고 있는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북한이 그에 동조했다는 것 자체가 확전의 위험을 안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대단한 경각심을 갖고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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