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권선형 기자] K배터리 업계가 5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국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배터리 관련 공약의 차이가 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K배터리 업황과 전망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4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K배터리 기업들은 두 후보의 정책분석을 마치고 각 시나리오별로 사업전략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배터리산업협회는 대선동향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실무진을 미국에 파견하는 등 업계에서는 전략을 보다 세밀하게 짜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K배터리 기업들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으며 미국 시장에서 성장해 왔다. K배터리 기업들의 2022년 미국 시장 점유율은 일본(48.0%)보다 크게 낮은 36.2%에 불과했지만, IRA 시행 이후 점유율이 높아졌다. 2023년 K배터리 기업의 점유율은 2022년 대비 6.2%p 오른 42.4%를 기록하며 일본(40.7%)을 제치고 미국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산업연구원이 이중차분법 등 계량경제학 방법론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IRA는 K배터리 기업의 미국 시장 판매량을 최대 26% 증가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K배터리 업계의 시나리오 중 최악의 결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IRA를 폐지하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녹색 사기(Green New Scam)’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전기차 의무전환 정책과 IRA의 전면폐기를 약속한 바 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 하더라도 IRA 폐지까지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고 보고 있다. IRA 폐지 공약에 대해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앤드류 가바리노 의원을 포함한 18명의 공화당 하원의원이 마이클 존슨 하원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IRA의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혜택을 폐지하지 말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들은 IRA가 기업들에게 중요한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만큼 이를 폐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IRA의 혜택을 받고 있는 기업 대다수가 공화당 소속 의원들과 관계가 깊어 IRA 법안 폐지는 현실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가 IRA 폐지를 실행에 옮긴다면 곧바로 정치적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며 “IRA로 인해 얻는 이익이 많은 의원들 때문에 트럼프 공약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가장 현실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행정부 권한 행사를 통해 전기차 세액공제 요건을 기존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꼽힌다. 예를 들면 수혜 차종 숫자를 줄이거나 내연차에 대한 지원 확대를 통해 전기차 보급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K배터리 기업들에게 부담감을 증가시킬 수 있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트럼프 측이 IRA 폐지를 주장했던 이유는 IRA에 따른 정부 재정 투입 규모가 정책효과에 비해 너무 과도하다는 점”이라며 “트럼프가 전기차 보급 확대에 회의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행정명령을 통해 지원 규모를 축소하는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망이 현실화되면 K배터리 업계의 투자위축도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K배터리 기업들은 IRA 효과와 시장성장 가능성을 반영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미국 내 총 생산능력은 2023년 117GWh(기가와트시)에서 2027년에는 635GWh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정책의 방향성이 크게 바뀔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되면 전기차 구매를 위한 IRA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가 안정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K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 확고히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 미국 내 투자 확대로 인한 수익성도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12월 27일부터는 IRA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 최종 가이던스에 따라 배터리 셀은 kWh(킬로와트시)당 35달러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모듈의 경우 kWh당 10달러가 지원된다.
나아가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이 차량 연비 규제를 점진적으로 강화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전기차의 수요를 자극하는 다양한 정책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황 부연구위원은 “K배터리 기업들은 해외 생산 비중이 높다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미국의 배터리산업 육성 정책이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이어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미시간 등 7개 주에 대해서는 투자로 인한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며 “그 결과를 IRA 관련한 신규 시행 지침안에 대한 양국간 협상 시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제언했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