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체계적인 간병제도가 필요하다.”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국내 간병제도 정립을 향한 통일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지는 오늘(4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국민의힘)·이수진·김남희·김윤·박희승 의원(더불어민주당),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조정훈 의원(국민의힘)과 함께 ‘간병제도 정립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우리나라는 내년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5%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하지만 아직 체계적으로 정립된 간병제도가 없다 보니 간병서비스의 정의는 물론 간병인의 역할, 교육, 업무범위 등 많은 부분이 모호한 실정이다. 이는 곧 간병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려 이미 간병비 부담으로 고된 환자, 보호자의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으며 간병인력 역시 정식으로 교육받지 못한 중국 동포들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우리나라에 적합한 간병제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그 첫 번째 자리로 의료계, 학계, 환자단체, 언론, 정부관계자 등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의원들은 진심을 담은 축사로 성공적인 토론회를 기원했다.
백종헌 의원은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오늘 토론회가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간병제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희승 의원은 “분야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간병정책 수립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범사회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수진 의원은 “오늘 같은 자리가 만들어진 데는 간병제도 정립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며 “개인적으로 간병비 급여화 3법을 발의한 바, 앞으로도 간병제도 정립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김남희 의원은 “우리나라처럼 간병부담이 큰 국가는 없다”며 “간병제도 정립은 물론 간병인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등 간병인들을 공적 체계 안에 어떻게 편입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 의원은 “요양병원에서의 돌봄과 집에서 머무는 노인을 위한 재가서비스는 자전거바퀴처럼 맞물려 균형있게 추진돼야 한다”며 “향후에는 재가 돌봄도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좌장을 맡은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원 양성일 특임교수(전 보건복지부 차관)는 “간병제도가 정립되기까진 많은 난관이 있지만 오늘 토론회를 기점으로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나갈 수 있길 바란다”며 토론회의 문을 열었다.
“외국인 간병인 중 중국 국적 교포의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문제는 법적 규제가 없어 관리감독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첫 주제발표자로 나선 대한요양병원협회 이운용 대구협회장은 요양병원 간병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운용 대구협회장은 “3D 업종이라는 인식, 의료행위와 관련된 법적책임, 적은 급여 등의 이유로 국내 간병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며 “간병인을 구해도 관련 제도가 없다 보니 정식 근로자 형태로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간호·간병인력의 부족문제, 대상자 선정의 불투명성 등 정부가 시작한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운용 대구협회장은 “특히 간병지원대상자는 의료최고도 또는 고도환자이면서 장기요양 1~2등급 수준의 와상환자인데 여기에 해당하는 환자가 그리 많지 않으며 지원기간도 최대 180일까지”라며 “연장도 불투명한 상황이라 환자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환자 선정도 건보공단의 의료 요양통합판정방식에 의해 선정되는데 관련 인력이 부족한 데다 탈락 이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환자, 보호자에게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이 와중에 시범사업의 내년 예산이 축소돼 오늘 자리를 빌어 사업 시행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병제도를 구축하기에 앞서 국내 간병서비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이주열 교수는 이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제도화를 위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그가 언급한 주요 문제점은 ▲열악한 간병서비스 인력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관리감독 체계 미흡 ▲정부 및 의료기관의 간병서비스 제도화 의지 부족 ▲간병 급여화와 관련된 법적 근거 미흡 등이다.
이주열 교수는 이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으로 ▲간병서비스를 의료적 간병과 생활지원 간병으로 구분하고 담당인력과 재원을 결정할 것 ▲보건복지부와 중앙사회서비스원, 복지재단 등 각 기관별로 담당업무를 세분화해 간병서비스 관리체계를 구축할 것 ▲병원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구분되는 요양병원 간병서비스 급여방식을 개발할 것 등을 제안했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캘리포니아주립대 정규석 교수는 간병제도화에 성공한 미국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가 얻을 수 있는 혜안을 제시했다.
이주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메디케이드 제도, 즉 한국의 의료급여와 비슷한 국민의 의료보조제도를 통해 지원대상이 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 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또 가정간호 서비스를 활성화해 간병서비스뿐 아니라 욕실에 미끄럼방지 매트를 깔아주는 등 생활보조서비스까지 확대 지원 중이다.
간병 인력 또한 여러 명으로 세분화해 각기 맡는 환자 인원과 근무시간을 규정하고 있으며 간병인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불시점검을 포함, 학대나 방임을 목격할 경우 주정부에 신고하게 돼 있다. 또 요양병원과 일반병원을 대상으로 등급시스템을 운영, 등급이 낮은 시설은 추가 감독한다. 요양시설 역시 문제 발생 시 개선 계획을 제출해야 하며 심한 경우 범죄 혐의로 기소까지 될 수 있다. 따로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 간병에 대한 관리감독까지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정규석 교수는 “한국도 포괄적인 간병서비스 확대와 지역별 맞춤형 간병서비스 제공을 위한 유연한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며 간병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간병인의 자격을 체계화하고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정토론에서는 더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경기 서부노인보호전문기관 이현주 관장은 국가가 시행 중인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을 중심으로 개선점을 역설했다. 이현주 관장은 “지원대상을 장기요양 1·2등급으로 선정한 것은 서비스의 진입장벽을 높게만 할 뿐”이라며 국가가 노인의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면 대상자 선정기준을 점검하고 신청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접근성 개선을 위해 해당 병원 의료진이 자체적으로 환자 평가를 실시해야 하며 필요 시 표준 도구를 적용, 먼저 간병을 제공하고 이후 심사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간병제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법적 조항에도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법무법인 문장 임원택 변호사는 “국민건강보험법 및 의료급여법의 급여대상에 간병을 명시하고 간병인 자격, 인력, 처우, 업무범위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이러한 내용이 전무해 간병인은 정식 근로자로서 어떤 법적 지위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요양병원협회 안병태 부회장은 “간병지원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현재 소수의 인원만 지원되고 있으며 지원기간 제한 때문에 결국 180일 이후면 사적간병으로 돌아간다”며 현 시범사업안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급성기 병원과 요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100% 사적간병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장기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머무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적합한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대구보건대 간호대학 임은실 교수는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의 업무범와 교육과정을 소개하면서 간병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은실 교수는 “간병인은 간호조무사와 비슷한 돌봄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간호조무사의 기본 교육과정을 포함한 별도의 교육과정을 개발해 전문 간병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돌봄을 제공받는 당사자인 환자와 보호자들의 목소리도 전달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간병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데 이것과 관련한 입법이 아직도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요양병원 등 간병 사각지대에 과연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환자와 보호자의 목소리를 듣고 간병을 정식으로 제도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본지 한정선 기자는 그간 국내 간병제도의 문제점을 집중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간병인력 수급문제와 간병비 부담 완화를 위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한정선 기자는 “현재 간병인은 중국동포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으며 이들 간 담합으로 간병비가 급격히 상승했다”며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몽골 등 간병인의 국적 다양화를 모색해 경쟁을 통한 간병비 하락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현지 교육기관과 연결해 체계적인 간병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과 높은 취업비자 문턱을 낮춰 외국 간병인력이 국내에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질적인 정부 지원 필요성도 언급됐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는 장기요양보험수급자가 병원을 이용하는 경우 요양병원 간병비를 특별현금급여로 지급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를 실제 수행할 수 있는 하위법령이 없다 보니 정작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 한정선 기자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1조에 간병비 항목을 추가해 간병서비스에 대한 급여기준을 마련하거나 노인장기요양보험법 하위법령을 제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정부도 나름의 입장을 확고하게 밝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연구실 장기수요연구센터 한은정 센터장은 간병지원 대상자를 선정할 때 왜 통합판정체계를 적용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한은정 센터장은 “통합판정체계는 의료와 돌봄을 통합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 정부의 방향이기도 하다”며 “현장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왜 요양병원 간병만 별도의 체계를 적용해 지원대상자를 선정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언급했다.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박혜린 과장 역시 간병인에 대한 자격을 별도로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박혜린 과장은 “결국 간병제도 필요성을 논의하게 된 계기는 현재 우리나라 간호사, 요양보호사들이 제대로 된 간병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렇다면 간병인이라는 자격을 별도로 마련할 것이 아니라 현 인력이 간병업무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늘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간병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이며 모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간병서비스 확립과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간병제도 정립을 향한 논의의 장은 앞으로 계속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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