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끝 무지개 ‘다문화 사회’ 뜬다

인구절벽 끝 무지개 ‘다문화 사회’ 뜬다

더리더 2024-11-04 10:32:06 신고

3줄요약

[심층리포트①]없어선 안 되는 존재 ‘5%’ 육박, 외국인 인식 전환 교육 필요


#장면1. 지난 8월 6일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에 취재진들이 모였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진행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입국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필리핀을 상징하는 파란색 옷을 입고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들어섰다. 취재진 요청에 손을 흔들거나 손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한 달간 직무교육을 받고 9월부터 최저시급을 받으며 신청 가정에서 일하고 있다.

#장면2. 10월 23일 오후 경기 시흥시 정왕동 정왕전통시장 거리에는 한국 간판보다 중국 간판이,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다. 한 상점 앞에서 큰 소리로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도 중국어로 손님을 불러 모았다. 한 손님이 가게 앞에 멈춰 서서 구경하자 중국어로 설명했다. 인근 바닷가인 오이도에서는 안산, 시흥 공장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바닷가 거리에서 외국인들이 맥주나 소주를 사서 노상을 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우리나라가 곧 ‘다문화 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가 10월 8일 발표한 ‘2022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 따르면, 외국인 수는 작년 11월 기준 226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4%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 나라의 외국인 비율이 5%를 넘는 경우 다문화사회로 보고 있다. 올해 필리핀 가사도우미 등이 도입되면서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지자체 인구와 비교하면, 대구광역시(236만 명)와 비슷한 수준이다. 심지어 충청남도(213만 명), 전라남도(179만 명,) 전라북도(174만 명), 강원도(152만 명)보다 많은 수다. 외국인을 한 곳에 모아두면, 광역시·도 급인 광역 지자체를 한 곳 더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외국인이 늘어난 배경에는 ‘고용허가제’ 도입이 꼽힌다.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일부 업종에 대해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서비스업을 비롯해 인력난이 심한 제조업, 조선업, 농축산업, 어업, 건설업 등 6개 부문별로 도입 쿼터를 정부에서 정한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의 일손 부족을 해소한다는 취지에서다.

통계청의 ‘2023년 국제인구이동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0일 초과 체류’로 입국한 외국인은 △취업(36.1%) △단기(21%) △유학·일반연수(17.3%) △영주·결혼이민(12.1%)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4년 180만 명이었던 국내 이주민이 10년 만에 47% 가까이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2022년부터는 정부가 제조·해운·건설업 등의 구인난을 해소하기 위해 단순 외국 인력(E-9) 쿼터 확대 및 허용 업종 추가를 도입하면서 빗장을 푼 것도 하나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E-9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2022년 6만9000명에서 지난해 12만 명, 올해 16만5000명으로 확대해왔다.

정부가 앞으로 숙련기능인력(E-7-4) 쿼터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취업 목적의 외국인 유입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엔 외국인 근로자만 300만 명을 넘어설 거란 추산도 나온다.


“외국인 없으면 공장 안 돌아가요…산업도, 대학도 ‘외국인 필수’”


3D업종을 대체할 수 있는 비전문취업(E-9) 노동자 중심으로 많이 유입되자 일선의 산업 현장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됐다. 비전문취업 노동자들은 현행법상 최대 4년 10개월 동안 체류가 가능하며 농업·제조업·건설업 등 취업할 수 있는 업종이 제한된다. 비전문취업자란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규정에 따라 국내 취업 요건을 갖춘 외국인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곳이 건설 현장이다.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이 없으면 공사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만큼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늘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해 발간한 ‘건설근로자 수급실태 및 훈련수요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무려 43만6000여 명으로 추정했다. 이 중 30만 명은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업계에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해 4분기까지 국내인력, 기능인력(E-7), 저숙련인력(E-9) 등을 합쳐 총 1만4359명의 생산인력을 국내 조선산업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이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만2000여 명으로 전체의 85.9%가 넘는다.

인력난이 심해지고 있어 외국인 비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조선업계는 상반기 역대급 수주 잭폿을 터트려 앞으로 근로자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조선업계 인력 부족이 올해부터 연평균 1만2000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2027년부터는 13만 명의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학령인구 감소로 입학생 수가 줄어 위기에 직면한 대학에도 외국인은 대안으로 떠올랐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국내 학령인구(6~21세)는 올해 714만 명이다. 2060년에는 377만 명으로 축소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국내 대학 졸업 후 구직·인턴 기간을 확대하고, 비전문 분야 취업 허용 등 인재 유치 분야를 다변화하는 등 각종 유학생 유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결과로 외국인 유학생은 1년 새 3만3000명(20.9%)이 증가해 지난해 18만9000명을 넘었다.

교육부가 지난해 8월 2027년까지 30만 유학생을 유치해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유학생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스터디 코리아 300K)을 내놔 앞으로 외국인 유학생 비중은 더욱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없던 권리금도 붙었다”…‘큰손’ 외국인, 지역 경제 흔들기도


외국인의 수가 많아지자 국가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민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외국인 노동자의 경제유발 효과가 86조 7000억원에 이른다. 2026년엔 162조 2000억원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특히 인구 감소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는 외국인이 ‘큰손’이 되기도 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역별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은 경기 안산이었다. 안산에는 10만1850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전체 안산 주민의 14.2%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이어 경기 수원(6만8633명), 시흥(6만8482명), 화성(6만6955명) 등에 외국인이 많이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 시흥시 정왕시장은 외국인이 유입되면서 지난 2016년 7월 전통시장 인증을 받은 곳이다. 정왕시장 한 관계자는 “외국인이 유입되기 전에만 해도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장”이라며 “하지만 외국인들이 본격 유입된 이후 상권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외국인 손님들이 물건을 많이 사는 데다 식당에서 단체 회식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라 식료품점은 동남아시아 향신료를, 정육점은 외국인이 많이 사는 내장류를 일부러 들여놓는 등 구색도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훈풍은 부동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왕시장 일대 상가나 원룸 등은 공실을 찾아보기 힘들고 ‘권리금’이 붙은 가게도 있다. 정왕시장 인근 공인중개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10년 전에 비하면 투자자도 많아져 권리금이 붙을 정도”며 “시장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직접 매매하기도 하고, 외국인 투자자가 와서 사기도 해 큰 폭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정지윤 명지대 산업대학원 이민·다문화학 교수는 “인구 절벽, 일손 부족 등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는 귀한 손님”이라며 “지역에서는 필요한 노동을 외국인이 대신 해주기 때문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 정주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며 “한국사람도 외국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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