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피플] "한국경제는 미국과 달라…금리 소폭인하 그쳐야"

[이코노피플] "한국경제는 미국과 달라…금리 소폭인하 그쳐야"

연합뉴스 2024-11-04 06:11:01 신고

3줄요약

미국은 강한 성장 모멘텀 유지…한국은 거시경제 취약성 노출

원/달러 환율 1,400원 넘어도 일시적…미 대선후 하락 가능성도

가계부채·아파트값이 통화정책의 주요 고려 요인돼

이승헌 전 한국은행 부총재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 "미국 경제는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강한 성장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거시경제적 취약성이 확대돼 성장 모멘텀이 크게 약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내수 진작을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내리면 부작용이 더 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중에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기준금리는 현재 인플레이션이 안정된 정도만 반영하는 소폭 인하에 그쳐야 합니다"

지난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내렸고 한국은행도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며 이른바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전환)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가계부채 증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 등은 한은이 내년까지 지속적으로, 또 빠른 속도로 금리를 내리기 부담스러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까지 한국은행 부총재를 지내며 당연직 금융통화위원으로 기준금리 결정에 직접 참여했던 이승헌 숭실대 교수는 최근 진행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큰 폭의 기준금리 인하는 주택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부담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계했다.

이 교수는 또 최근 원/달러 환율의 급등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프리미엄이 과대 반영된 측면이 있다면서 달러 가치가 1,400원을 넘어서기 어렵고 일시적으로 넘어서더라도 다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이승헌 숭실대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 이승헌 숭실대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

[촬영 김지훈]

▲ 금리 인하를 시작한 미국 연준이 앞으로 어떤 속도로, 얼마나 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하는지.

--현재 미국과 한국은 매우 다른 경제 상황에 놓여있다. 2021년 이후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경제 현상이어서 각국이 공통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공통 요인이 약해지면서 국가별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미국은 아직 강한 성장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생산성 향상이다. 이는 주로 AI 중심의 정보기술(IT)과 온라인 경제의 활성화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의 이민정책으로 상당한 이민자가 유입되고 있다. 노동 공급 확대는 성장을 확대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자 및 기업의 높은 소득과 안정된 재무구조가 있다. 팬데믹 이후 미 정부의 막대한 소득지원과 몇 년에 걸친 주가 상승은 높은 수준의 소비를 지속할 수 있게 했다. 이 성장 모멘텀은 점차 작아지고 있으나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연준의 금리인하는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그 폭도 현재 시장에 반영된 것보다 작을 것으로 예상한다.

▲ 한국은행도 10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전망은.

--유가 등 글로벌 물가상승 요인의 안정과 금리인상 효과로 인플레이션은 이제 안정세를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거시경제적 취약성이 확대되고 있는 점이다. 한국경제의 성장 모멘텀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3분기에 수출이 전기대비 0.4% 감소한 것은 일시적 요인의 영향도 있지만 여러 불안요인을 보여준다. 우리와 교역비중이 큰 중국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데다 반도체 등 IT부문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내부적으로 건설부문은 PF사업 중심의 높은 레버리지로 인한 과잉투자 상태여서 상당한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므로 당분간 높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설비투자는 수출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소비의 경우 가계의 차입이 소득 대비 매우 큰 규모로 커져 있어 소비의 성장세를 제약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소득 증가가 제한되고 있는 데다 가계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의 가격은 더 오르기 어렵다. 금리 인하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만일 내수 진작을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내리면 건설투자와 소비를 일부 끌어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주택가격 상승을 유발하고 가계의 부채 부담을 높인다. 이에 따라 환율도 1천400원 이상으로 크게 높아지는 등 금융 불안을 가중할 것이다. 성장률을 잠시 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더 크고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중에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기준금리는 현재 인플레이션이 안정된 정도만 반영하는 소폭 인하에 그쳐야 한다.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결정 때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부채 증가세를 예의주시하고 있고 부동산과 통화정책과의 연계성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많다. 금리와 환율, 수출 등 거시 경제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한은 기준금리를 아파트값이 좌우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닌지.

--통화정책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큰 거시경제 목표 달성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아파트값이라는 특정한 미시적 목표를 겨냥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의 아파트값은 강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부동산 가격 상승의 전초 역할을 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전국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인플레이션을 동반한다. 일단 가격 상승세가 자리를 잡으면 경제에 매우 큰 충격을 주는 금리 인상을 통해 대응해야 한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와 장기침체,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모두 부동산 가격 상승의 결과이다. 자칫 성급한 금리인하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전달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촉발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둔화와 일부 성장둔화 이슈를 반영하되 부동산 가격불안도 고려해 잘 정리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3년 4월11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연합뉴스 자료사진] 2023년 4월11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연합뉴스 자료사진]

▲ 최근 미국 대선 전망과 연계한 달러 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향후 환율 수준에 대한 전망은. 또 가계부채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 상승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원/달러 환율은 주로 미 달러화에 연동돼 움직이고 있다. 미 달러화 가치는 미국과 유럽 간의 성장률·인플레이션 차이, 그리고 이를 반영한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 차이, 그리고 양 경제권 간의 금리 차이에 주로 영향받는다. 최근 미국이 매우 강한 성장세를 보이는 반면 유럽은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이에 따라 미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중후반 수준을 유지하는 이런 달러의 강세를 반영하고 있다.

미 대선 결과 예측엔 불확실성이 있지만 누가 되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미 대선 이후 미국 금리가 더 높아질 것을 예상해 최근 달러가 급등했다. 특히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한국에 불리한 정책이 취해질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상승세가 가중됐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많은 불확실성을 갖고 있고 금리와 환율에 그 불확실성이 프리미엄으로 반영된 것이어서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환율이 상승세에 있지만 1,400원을 넘어서기는 힘들 것이다. 넘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이 될 것이고 대선 이후 오히려 반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환율이 불안한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하면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수 있다.

[그래픽] 원/달러 환율 추이 [그래픽] 원/달러 환율 추이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김민지 기자 =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로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자 원/달러 환율이 한 달 새 약 80원 뛰면서 다시 1,400원 선에 바짝 다가섰다. 지난 25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오후 3시 30분) 종가는 1,388.7원을 기록했다. minfo@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 중국 경기가 부진한 양상을 보이면서 '5% 안팎'이라는 성장률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각종 경기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미국의 새 행정부가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면 큰 타격이 예상되는데 한국의 수출도 영향을 받지 않을지.

--현재 중국경제는 구조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무리한 성장정책은 과잉투자와 막대한 금융부실을 만들었다. IT와 첨단 산업 등에 일부 성과는 있었다. 각 지자체별 경쟁적 건설투자와 산업지원으로 단기적인 성장률 목표는 달성했으나 장기 성장잠재력에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효과적인 구조조정 없이는 투자와 소비를 되살리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는 중국 경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 경제와 중국 간 연관관계가 큰 점을 생각할 때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이미 중국 의존도를 대폭 낮추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중국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수출에 영향이 없을 순 없다.

▲ '한은사(寺)'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정적이었던 한국은행이 최근 강남 집값과 대입제도, 외국인근로자 문제, 농산물 수입 등 사회 다방면에 걸친 현안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엇갈리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개인적으로 '한은사'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수행하는 통화정책, 조사연구, 지급결제, 발권 등의 업무는 소란스러울 필요가 없다. 모든 중앙은행이 비슷하다. 과거 은행감독원이 한은 내부에 있을 때 한은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입행 초기에 은행규제 업무를 담당했는데 온종일 사무실이 전쟁터였다. 그러다 한국은행법 개정 이후 2000년대 들어서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조용히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내부적으로는 토론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는지가 중요하다. 한은 내부에서는 그런 노력이 지속돼 왔다. 자료 공유, 토론의 문화를 확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2020년 작성한 'BOK 2030'이라는 중장기 발전전략의 핵심은 바로 이런 내부의 토론과 경쟁을 제도화하고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은이 통화정책 이외의 다른 현안에 의견을 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연구자가 다양한 의견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은 내부에서 여러 의견이 얼마나 자유롭게 개진되고 치열하게 논의되는지다. 그래야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은 내부에서 그런 소란스러운 토론의 문화가 더욱 확대되기를 바란다.

이승헌 숭실대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 이승헌 숭실대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

[촬영 김지훈]

hoon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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