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보고서…"美 상장사 인수합병 1건당 주주 대표소송 3∼5건"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기업 이사의 주주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로 상법이 개정될 경우 미국의 경우처럼 인수합병(M&A)이나 기업 구조 개편 과정에서 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제22대 국회 출범 이후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은 총 8건 발의된 상태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4일 발표한 '미국 M&A 주주대표 소송과 이사 충실 의무' 보고서에서 "영미법계의 이사 신인의무(fiduciary duty) 법리를 한국 상법에 무리하게 도입하면 기업이 소송에 시달려 가치가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신인의무란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충실의무 등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회사가 M&A 계획을 발표한 경우 대부분 이사가 신인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주대표 소송(소수주주가 이사 등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을 당한다고 한경협은 설명했다.
한경협이 2009∼2018년 미국 상장회사의 1억달러(1천380억원) 이상 규모 M&A 거래 1천928건을 분석한 결과 매년 인수합병 거래의 71∼94%가 주주대표 소송을 당했다.
2016년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이 주주대표 소송 남발에 제동을 건 '트룰리아 판결'에 일시적으로 소송이 줄었으나, 이후 연방법원 등 타지역에서의 소송은 대폭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인수합병 거래 1건당 제기되는 주주대표 소송은 평균 3∼5건이라고 한경협은 밝혔다.
주주들은 공시 정보 부족이나 중요 사항 누락 등을 이유로 들어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는데, 대개 회사 측과 '단순 추가공시'나 '합병 대가 상향 조정' 등의 방식으로 화해하거나 소를 취하하는 방식으로 정리된다.
이때 회사는 원활한 M&A 진행을 위해 원고 측 변호사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일종의 'M&A 거래세'로 작용한다고 한경협은 설명했다.
미국은 주주대표 소송 과정에서 이사가 권한 내에서 행위를 했다면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개인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한다. 이를 통해 이사의 책임을 제한하거나 면책해 소송 과정에서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상법에도 이사 책임 면제 조항이 있지만, 주주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 적용할 수 있기에 주주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상장회사에는 적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조항이라고 한경협은 지적했다.
이사의 경영 판단에 대해 형법상 배임죄가 적용될 가능성도 기업인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한경협은 주장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면 이사에 대한 주주대표 소송뿐 아니라 배임죄 고발도 빈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민법상의 위임 계약에 근거해 이사의 책임 범위를 설정한 우리 상법에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체계에 전혀 맞지 않는다"며 "주주에게 별다른 이익도 없고 기업들은 소송에 시달려 기업 가치 하락의 우려가 큰 만큼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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