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김판곤 감독(가운데)이 1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36라운드 홈경기에서 강원을 2-1로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코치진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26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지하 10층부터 올라온 것 같다.”
김판곤 울산 HD 감독(55)은 1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강원FC와 ‘하나은행 K리그1 2024’ 36라운드 홈경기에서 2-1로 이겨 조기에 우승을 확정한 뒤 자신의 커리어를 담담히 돌아봤다. 김 감독은 “늘 이런 기회를 잡고 싶었는데, 기회가 오지 않았다”며 “하지만 울산이 나를 불러줬다. 감사하다. 좋은 선수들과 일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는 벅찬 소감을 전했다.
7월 축구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옮긴 홍명보 감독의 뒤를 이어 김 감독이 울산 지휘봉을 잡았다. 선수 시절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울산에서 뛰며 팀의 K리그 첫 우승(1996년)을 함께한 그는 사령탑으로 다시 울산 벤치에 앉았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내가 뛴 울산의 감독으로 부임해 영광스럽지만, 막중한 책임감이 든다”고 밝히며 “리그 우승”이라는 목표도 빼놓지 않았다.
김 감독은 소위 말하는 ‘주류 지도자’가 아니었다. 1998년 중경고 수석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국내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한 홍콩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0년 홍콩 더블 플라워 FA에서 플레잉코치, 2003년 홍콩 레인저스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했다.
낯선 홍콩 무대에서 능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사우스 차이나 AA에서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끈 업적을 바탕으로 2012년 홍콩국가대표팀과 23세 이하(U-23)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고,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도 취임했다. 2018년에는 대한축구협회(KFA) 부회장과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행정가로서 능력도 발휘했다.
올해 1월 카타르아시안컵에선 말레이시아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조별리그 E조에서 한국과 접전을 펼치며 3-3 무승부를 연출했다. 말레이시아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김 감독의 지도력은 빛난 대회였다. 이후 그는 친정팀 울산으로 돌아와 리그 3연패를 안기며 지도자로서 성공시대를 활짝 열었다.
김 감독의 성공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낯선 해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끝없는 영어 공부와 최신 축구 전술 경향을 파악하려는 진취적 자세는 그의 노력을 방증하는 일화들이다. 화려한 출발은 아니었지만, 끝없이 성장을 갈구했다.
강원전 직후 김 감독은 “26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했는데, 지하 10층에서 시작한 것 같다”며 “울산 감독으로 부임한 뒤 매 경기 평가를 받아야 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어 “하지만 스스로 싸워서 이겨내야 했다. 하루 13시간 동안 일했다. 선수들도 의심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을 가졌을 것”이라며 웃었다.
백현기 기자 hk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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