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RM의 두 번째 정규 앨범 〈Right Place, Wrong Person〉을 들었을 때 처음 든 감정은 괜한 부러움이다. 1집 〈Indigo〉에서 그가 화가 윤형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낼 때만 해도 그렇진 않았다. 익히 미술애호가란 사실은 알려져 있으니 뜻밖의 선택은 아니라 생각했다. 새 앨범을 통해 RM은 한 시절 자기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의 집합체를 내보이는 것 같았다. 바밍타이거의 산얀, 오혁, 실리카겔의 김한주, 뮤직비디오와 미술에는 이성진 감독, 류성희 미술감독까지. 같이 일하고 싶은 창작자들과 응당 작업할 수 있는 스타의 삶. 멋지다고 생각했다. 앨범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취향과 레퍼런스, 일기 같은 이야기가 뒤섞인 고백 같았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공개한 다큐멘터리 〈알엠: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에는 이 두 번째 앨범을 완성하기까지의 내밀한 과정이 담겨 있다. K팝 스타의 삶은, SNS 속 피드와 같아서 멀리서 보면 그저 반짝거리게만 보인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화려한 삶. 고된 연습 생활과 스케줄, 엄정한 규칙과 평가들. 이런 현실을 일반인은 이해할 방도가 없고 짐작도 어렵다. 영화는 몇 년 전부터 쏟아지는 K팝 아티스트 산업과 관련한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길을 간다. 모든 현실을 감내한 뒤 우뚝 무대에 선 스타의 삶을 조명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RM은 말한다. “K팝 스타로서 대체 서른 살이란 뭐냐.” 말랑한 주제보다 자기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무얼지, 동료들과 음악을 만드는 건 어떤 의미인지 시종일관 가감 없이 얘기한다. ‘온종일 관찰 당하고, 아카이빙 당하는’ 스스로 선택한 삶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고정되지 않은 정체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이란 매번 쉽지 않다 말한다.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은, ‘누군가를 이루는 세계의 조각을 본 느낌’이라는 것. “매 순간 집중했지, 최선을 다했고. 그랬지만 내가 나라고 느낀 적은 없어. 나로서 존재하는 느낌이, 아주 오랜만에 들어.” 앨범을 만들며 RM은 이렇게 말한다. 그저 삶이란 게 무엇인지 정체가 궁금한 빨간머리 앤의 말 같다. 너무 솔직해서, 잃을 것도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음악은, 아티스트는 바래지 않을 것만 같다. 선명하게.
※ 〈알엠: 라이트 피플, 롱 플레이스〉는 12월 초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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