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여름 오키나와 전투 70주년을 맞이해
미국 하와이주 진주만에 있는 전함 미주리 기념관에서 가미카제 기념회가 열렸다.
이 역사적인 전시를 통해 미국과 일본 양국은 굳건히 함께 서서 화해와 상호 이해의 정신으로 그 과거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그중에서도 특공 대원들의 편지에 미국인들은 관심을 가졌고
특히 한 파일럿의 글이 눈길을 끌었다.
당시 대학생이 마주한 현실과 일본제국의 군국주의를 비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우에하라 료지》
1922년 9월 27일 생 - 1945년 5월 11일 사망
나가노현 이케다마치에서 태어난 우에하라는 1942년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했지만
재학중 징병유예제도의 정지로 인하여 학도병으로 출진하여 대학을 앞당겨 졸업했다.
1943년 12월 1일에 육군에 배속되어 보병 제 50연대에 있다가 제 2기 특별조종견습사관으로 선발되어 조종훈련을 받고 1944년에 쿠마가야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했다.
이시점에 그는 일본제국이 패할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동시에 생명을 바쳐 싸우려는 결의도 하고 있었다 .
1945년 3월 6일 특공 자원자를 모집할때, 우에하라는 함께 훈련하고 있던 80명의 탑승원과 특공에 지원했다.
(출격직전 군가를 부르는 모습 왼쪽 3번째)
기쿠스이(菊水) 6호 작전이 발령된 1945년 5월 11일 오전 6시 15분에 육군특별공격대 제 56 신부(振武)대 대원으로 3식 전투기 히엔(飛燕)에 올라 치란 기지에서 출격한 우에하라는 약 3시간 후 오키나와에서 미해군 제58기동부대에 돌입하다가 전사했다.
향년 22세.
그가 남긴 편지들과
소감(所感)이라는 출격전야에 쓴 유서는 전쟁 후에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여전히 일본의 전쟁문학 작품의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2022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아즈미노시에서 기념회를 열기도 했다.
모교 게이오기주쿠대학, 히요시 캠퍼스 제1교사(현재 고등학교)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학생들의 수기가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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