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할리우드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와 데보라 카(Deborah Kerr)가 주연한 영화 ‘쿼바디스’의 원제목이다. 이 영화는 로마가 몰락해가던 시점 폭군 황제 네로가 기독교를 탄압하던 시대에 네로 황녀 리지아, 기독교를 대표하는 비니키우스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둘의 혼란스럽고 비극적인 상황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가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오늘날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쟁을 보면, 이 제목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 논의는 최근에 갑자기 떠오른 이야기가 아니다. 2008년에 시작된 이 논의는 햇수로 벌써 16년째다. 선거철에는 빠짐없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선거 출마자들은 모두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겨놓겠다며 1표를 외쳤다. 정책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깊이 얽혀 산업은행은 표심의 도구로만 소모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이를 국정 과제로 삼아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나, 2년 6개월이 다 되도록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반대하는 산업은행 노조와 조속히 이전을 바라는 부산 시민들의 갈등의 골만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전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셈법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갈등까지 감수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이면에는 현 정부의 부산을 금융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 목표가 실질적인 국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했을 때 과연 부산이 진정한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부산시 산하 부산연구원이 2022년 4월에 내놓은 보고서에서는 긍정적인 경제 효과를 예측했다. 2025년 산은 본사 근무 인원 절반이 내려올 때 부산·울산·경남 생산 유발 효과는 총 2조4076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1조5118억 원, 취업 유발 효과는 3만 6863명이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산업은행 노조가 한국재무학회에 의뢰한 보고서는 막대한 수익 감소를 경고하고 있다. 산은 이전으로 거래처의 이탈률이 늘고 직원들의 퇴사율도 심화하면서 향후 10년간 산업은행 수익이 6조5337억 원 감소한다는 것.
내부에서도 이 같은 불확실성에 대해 노사 공동 참여로 타당성 검토를 거쳐 신속한 결론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은행이 당면한 현안들이 부산 이전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들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M&A) 및 기업 구조조정 등 다양한 금융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이전 논의만이 우선시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이미 시기가 지난 화두일지도 모른다. 20년 전의 미래 구상에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란 이제 쉽지 않다. 블록체인, 인공지능(AI)이 중심인 새로운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금융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진정한 해법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를 ‘디지털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로 재구성해, 한국의 디지털 금융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한다.
단순히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아시아 금융 허브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는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 서울조차 아시아 금융 허브로 자리 잡기에는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산업은행 이전이 부산과 지역 경제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근본적으로 홍콩과 싱가포르와 같은 금융 허브들과 경쟁할 수 있는 종합적인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다.
영화 ‘쿼바디스’가 비극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들이 명분이나 형식이 아니라 원칙과 사랑이라는 본질을 지켰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진정한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본래 목적을 놓치지 않고, 부산이 기업과 금융 기관에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금융 시장이 묻고 있다. “산업은행 본점 이전, 어디로 가야 하냐고.”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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