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이니아선 벌써 '선거사기' 주장…지난 대선 데자뷔
'문제없다' 당국 설명에도 "보기힘든 규모 사기" 의혹 제기
(워싱턴·서울=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황철환 기자 = "하나님을 천국에서 데려올 수 있고, 하나님이 개표원이 된다면 우린 승리할 수 있다. 우린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에서도 이길 것이다. 그저 정직한 투표가 이뤄지도록 하면 된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 내에서는 패배 때 대선결과에 불복하기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일(현지시간) CNN 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뉴멕시코주(州) 유세에서 이같이 발언하면서 2016년과 2020년 대선 당시 뉴멕시코주에서 진행된 투표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난 우리가 (뉴멕시코에서) 두차례 승리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선 8%포인트차로, 2020년 대선에선 11%포인트차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와 조 바이든에게 밀려 멕시코주를 내줬는데, 모든 건 부정선거 탓이고 '진짜 승자'는 자신이라고 말한 것이다.
트럼프 측은 핵심 승부처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선거 사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 제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와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 대선 캠프는 펜실베이니아 벅스카운티에서 유권자 방해·겁박 행위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우편 투표용지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접수 마감 직전에 몰리는 상황에서 선거관리 당국이 이들 일부를 돌려보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트럼프 캠프는 신청 기간을 늘려달라고 지난달 29일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이 요구를 수용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9일 펜실베이니아 앨런타운에서 열린 유세에서 펜실베이니아의 랭커스터카운티와 요크카운티에서 가짜일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 등록 신청서가 접수됐다고 주장했다.
랭커스터카운티 당국은 지난주 약 2천500개의 유권자 등록 신청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검증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가짜 투표용지가 발견되거나 광범위한 사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징후는 드러나지 않았다.
요크카운티도 제3자 단체로부터 유권자 등록 신청서 한묶음을 받아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있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절차를 모두 선거 사기로 몰고 간 것이다.
그는 "그들은 이미 랭커스터에서 사기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기 쳤고 우리는 그들이 2천600표를 들고 있는 것을 발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펜실베이니아가 보기 힘든 규모로 사기를 치고 있고 들키고 있다. 당국에 사기를 신고하라. 사법 당국은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펜실베이니아 선거관리 당국자들은 소속 정당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다들 선거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트럼프 측은 실제로 문제가 있든 없든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도 선거를 조작하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부정선거 주장은 패배 때 결과에 불복하려고 '밑밥'을 까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2020년 대선 때에도 우편선거가 조작되고 있다고 주장한 뒤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배하자 불복을 선언하고 지지자들의 저항을 선동했다.
CNN 방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 매체들의 도움을 받아 이번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할 수밖에 없고 만약 진다면 부정선거 탓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퍼뜨리려 시도 중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동시에 대선에서 패배하면 또다시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며 소송 등으로 결과를 뒤집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CNN은 "이건 분명하고 의도적 전략의 일부"라며 "누가 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패배할 때를 대비한 '플랜 B'를 위해 2024 대선의 신뢰도를 망가뜨리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움직임은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 활동가들이 최근 대선 절차와 관련한 소송을 무더기로 제기하는 등 벌써부터 선거불복을 위한 단계적 계획을 수립하는 동향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판과 관련해 캐롤라인 레빗 트럼프 캠프 대변인은 "언론은 이런 사례를 음모론이라고 주장하지만, 트럼프 캠프와 공화당전국위원회는 모든 미국인이 지지 후보와 무관하게 안전하고 보안이 확보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모든 주장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선 승패와 무관하게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 자체를 겨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략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미 각종 여론조사에선 미국내 선거 관련 기관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약화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CNN은 "민주주의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는 국민의 신뢰가 유지되는데 달려 있다"면서 "대선후보 중 한 명이 그런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공화제의 핵심인 '통치받는 자'와 '통치하는 자' 간의 합의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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