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벽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소재 자택에서 잠을 자고 있던 시 샤오싱 박사는 거칠게 쿵쿵 두드리는 집 밖 소리에 급히 반바지만 걸치고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이내 총을 든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 십여 명이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며 시 박사의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침실에서 함께 나온 아내에게도 총이 겨눠졌다.
각각 13, 22살인 두 딸은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그렇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시 박사는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갔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는 이는 없었다.
2015년 5월 21일 새벽에 벌어진 그 일은 시 박사의 기억 속에 여전히 선명히 남아 있다.
템플대학교의 교수이자 초전도체 전문 물리학자인 시 박사는 중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며 사기 혐의 4건을 적용받았다. 징역 최대 80년과 최대 100만달러(약 13억원)의 벌금을 선고받을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4개월 후, FBI는 “핵심 증거”에 오류가 있었다며, 시 박사에 적용한 모든 혐의를 취하했다. 시 박사는 ‘포켓 히터’라고 불리는 민감한 초전도체 장치의 설계도를 중국 측 동료들에게 전송했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이후 그가 공유한 설계도는 포켓 히터와는 전혀 거리가 먼 장치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1966~1976년 중국 공산당이 지식인들을 숙청했던 문화 대혁명 당시 중등학교 학생이었던 시 박사는 “문화대혁명이 계속해서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현재 시 박사는 자신을 부당하게 취급하고, 헌법적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FB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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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사는 지난 10년간 전 세계 두 초강대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가운데 끼며 곤경에 처한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 중 하나다.
미국은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시작으로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국의 관계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하며 빠르게 악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 안보 전략’ 문서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기술은 양국 패권 경쟁의 핵심 분야 중 하나다.
중국계 과학자들을 향한 시선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영업비밀 도용, 해킹, 경제 스파이 행위를 단속한다는 ‘중국 이니셔티브’를 출범시킨 2018년부터 더 철저해지기 시작했다.
‘아시아계 미국인 학자 포럼’의 지젤 페레즈 쿠사카와 이사는 “중국 이니셔티브는 이들에 대한 이러한 철저한 조사를 공식화하고 더 악화시켰다. 이로 인해 대규모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했으며,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를 겨냥한 인종적 편견 및 프로파일링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도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그리 크게 바뀌지 않았으나, 중국 이니셔티브만큼만은 인종적 편견을 부추기는 “해로운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종료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 이니셔티브와 같은 프로그램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며 우려하기도 한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글로벌 경제 및 경영학 교수인 황 야셍 박사는 “이번 선거는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들에게 정말 중요하다”며 트럼프 집권 당시 중국 이니셔티브는 행정 조치였으나, 이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개월 전 미 하원은 공화당 의원 214명과 민주당 의원 23명의 지지를 기반으로 중국 이니셔티브 재개 법안을 승인한 바 있다. 물론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작지만, 다가오는 선거가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의 중국 이니셔티브에 따라 기소된 인원수를 한 번도 공개한 바 없다.
그러나 2018~2021년 법무부의 중국 이니셔티브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도자료를 인용한 2021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 보고서에 따르면 77건의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 약 150명 중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아울러 피고인 중 거의 90%가 중국계이다.
‘경제 스파이 법’ 위반 혐의는 25%에 불과했으며, 약 3분의 1은 연구 진실성 관련 혐의였다. 즉, 중국 기관과의 관계나 수입원을 정확히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신고 규정 등 악의가 없던 사례도 있을 수 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다. 단기로 직책을 맡거나, 외국의 자금을 받는 국제 협력은 학계에서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편 황 박사는 중국 이니셔티브가 실시되기 이전에는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들에 대한 조사가 “기술적 측면”에서 이뤄졌으나, 이후 기술에 대한 정보 발설 등으로 확장되면서 조사가 매우 주관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고 지적했다.
가족들이 겪는 트라우마
과거 미 캔자스 대학교의 화학과 교수였던 펭 타오 박사는 중국 이니셔티브에 따라 기소된 최초의 중국계 학자다. 미 당국은 익명의 제보를 받고 그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제보자는 캔자스 대학의 객원 연구원으로, 타오 박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 연구원은 30만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타오 박사를 FBI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우선 FBI는 타오 박사를 간첩 혐의로 조사했으나, 그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 대신 이들은 타오 박사가 정규직을 제안한 중국의 한 대학과 연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흔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타오 박사는 해당 대학에 실험실을 짓고자 중국을 방문했다.
2020년, 타오 박사는 두 연방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바 있는데, 이로 인해 사기 및 허위 진술 혐의로 기소됐다.
타오 박사가 누명을 벗기까지는 4년이 넘게 걸렸다. 결국 그는 자신이 해당 일자리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돈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아울러 법원은 또한 타오 박사가 해당 대학과의 관계를 캔자스 대학 측에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이는 정부 기관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의 유죄 판결은 지난 7월 최종적으로 뒤집혔다.
타오 박사는 캔자스 대학과 교수직 복귀에 대해 협상 중이라며 BBC와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캔자스 대학은 BBC의 관련 문의에 답하지 않았다.
한편 그의 가족은 여전히 해당 사건의 여파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내 펭 홍은 “남편은 하루에 16시간씩 거의 매일 일하던 사람”이라면서 “그는 순수 과학자였다. 이런 일이 남편에게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초음파 기술자인 아내는 230만달러에 달하는 소송 비용을 대고자 일주일에6일씩 일했으며, 종종 12시간씩 야간 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들 부부에게는 100만달러가 넘는 빚이 있다.
24시간 교대 근무를 마친 어느 날 밤, 운전하던 홍은 신호등 앞에서 차를 세웠다. 갑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만약 제가 무너진다면 우리 가족이 모두 흩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홍은 법정에서 가족들이 드론의 감시를 받기도 했음을 알게 됐다.
“아이들의 고등학교 등교 첫날, 그들은 우리 가족의 저장 드라이브 전체를 복사했더군요.”
인재 유출
중국계 캐나다인이자 나노기술 전문가로, 현재 미 테네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후 안밍 박사도 시와 타오 박사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후 박사는 지난 2020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기금 지원을 신청하면서 베이징 공과대학교에서 여름 강의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미 검찰이 도주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는 8일간 감옥에서 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다음 해 6월 후 박사는 결국 6가지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해당 사건으로 인해 그는 모든 연구 프로젝트를 떠나보내야 했다.
약 20년 전 자신의 커리어 발전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는 후 박사는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정당하다면서도 중국계 과학자들이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은 “장기적으로는 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지닌 리더십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7월 공개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21년 중국계 과학자 약 2만 명이 미국을 떠났으며, 2021년 한 해 떠난 이들은 전년 대비 거의 3배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이니셔티브 시작 이후 중국계 과학자의 미국 출국은 75%나 급증했는데,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2021년에만 과학자 1000명 이상이 미국을 떠났다.
하지만 중국계 인재들은 미국 기술 분야에서 “큰 몸집의 역할”을 했다. 2020년에만 미국의 모든 과학 및 기술 분야 박사 학위 중 17%가 중국 출신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후 박사 또한 과거에는 중국 출신 박사 과정 학생 8명을 지도했으나, 지금은 중국인 및 중국 기관과의 협업을 피하고 있다.
시 박사도 비슷하다. “중국과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것이다.
올해 9월, 미 상무부는 시 박사가 과거 함께 일했던 ‘중국과학원’의 ‘물리학 연구소’를 포함해 중국 기관 37곳을 수출 제한 목록에 추가했다. 시 박사는 이 목록이 더 길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시 박사와 후 박사 모두 모두 중국 출신 과학자들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우고 싶어 한다.
현재 관련 사회 활동을 벌이고 있는 후 박사는 지난 9월 의회에 나와 연설을 통해 의원들을 설득해 중국 이니셔티브의 부활을 막고자 애쓰기도 했다.
후 박사는 “인종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우려는 중국 이니셔티브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많은 학자들이 앞으로 고용주와 연방 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7년 시 박사는 FBI의 조치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지난해에야 연방 항소법원에서 진행 허가 판결을 받았다.
그 또한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시 박사는 “적어도 FBI 요원들을 증인석에 세워서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게 하고 싶다”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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