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삼성전자(005930)가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밀린 데 이어 메모리 핵심 인력 유출로 내홍을 겪고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인재제일' 철학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올해 연말 인사에서 이재용 회장이 내놓을 위기 타개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일 삼성전자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삼성전자 창립 55주년 기념식 현장. ⓒ 삼성전자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서 3조86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이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000660) 7조300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전 분기 61%에서 42%로 19%포인트(p)가량 축소됐다.
앞서 시장에서는 잠정 실적 발표 이후 눈높이를 낮춰 DS 부문이 4조2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도 낮았다. 메모리사업부가 7조원 가까운 이익을 낸 것으로 추산되지만,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큰 손실을 내면서 전체 이익을 깎은 영향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전 분기 대비 재고평가손 환입 규모 축소와 인센티브 충당 등 일회성 비용, 달러 약세에 따른 환영향 등으로 이익이 감소했다"며 "이로 인해 시장 컨센서스와 차이가 크게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일회성 비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실제 실적 9조1800억원과 시장 컨센서스(10조4000억원)와의 차이를 감안하면 1조2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올해 메모리 왕좌 타이틀을 SK하이닉스에 내줄 가능성이 가시화됐다. 실제로 반도체 영업이익을 올 1~3분기로 확대해 보면 삼성전자 12조2200억원, SK하이닉스 15조3845억원 수준이다. SK하이닉스가 이미 3조원 이상 많은 상황이다.
◆기술 경쟁력 흔들리는 삼성 vs '역대급' 성과급 예고한 SK하이닉스
특히 올 3분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한 SK하이닉스가 '성과급 잔치'를 벌일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삼성전자 내부 사기가 저하될 우려마저 감지된다.
실제로 올 상반기만 보더라도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2배 이상 많은 성과급을 지급했다. SK하이닉스는 올 상반기에 지급하는 생산성 격려금(PI)을 최대 수준인 월 기본급의 150%로 책정했다. 삼성전자 DS 부문 메모리사업부의 상반기 TAI(목표달성성과급‧옛 PI)는 기본급의 75%였다.
또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지난해 연간 기준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단순 격려금만 받았지만, 올해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만큼 상한선까지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례 성과급과 별도로 지급하는 '격려금'도 관심사다. SK하이닉스는 전날 회사 성장에 이바지한 직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전 직원에게 450만원의 '원팀 마인드 격려금'을 지급했다. 이는 최근 노사가 2024년 임금단체협약(임단협) 재교섭에서 최종 합의한 데 따른 것으로, 당초 합의안보다 100만원 늘어난 액수다.
SK하이닉스는 매년 실적에 따라 연 2회 PI와 연 1회 PS(초과이익분배금)를 지급하고 있다. PI는 생산량 목표 달성을 전제로 지급하는데, 영업이익률이 30% 이상일 땐 기본급의 150%가 지급된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영업이익률이 40%에 달하고, 4분기에도 30%를 넘을 가능성이 큰 만큼 올해 하반기 기본급의 150%가 PI로 지급될 전망이다. 이는 신입사원 기준 약 400만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올 상반기에 책정된 성과급과 동일한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의 직원들도 매년 세 차례 공식적으로 성과급을 받는다. 1월 OPI(성과인센티브‧옛 PS)와 7월과 12월 TAI 등 총 3회다.
OPI는 연초 수립한 이익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초과 이익의 20% 범위에서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하는 식이다. SK하이닉스의 PS와 동일한 개념으로, 삼성전자의 성과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삼성은 성과급 '산정 기준' 두고 논쟁 여전
다만 성과급을 산정하는 방식은 양사가 상이하다.
ⓒ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자체적으로 마련한 '경제적부가가치(EVA)'에 근거해 성과급을 산정한다. EVA란 영업이익에서 법인세, 향후 투자금액 등을 뺀 것으로, 영업활동을 통해 얻은 순수한 이익을 말한다. 즉 매년 집행하는 설비투자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야 성과급을 받는 구조라는 의미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지난 2021년 특별성과급 체계를 개편, 이익분배금 산정 기준을 기존 EVA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꿨다.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내부 구성원들의 요구에 합의한 것으로, 이와 함께 지급 예상치도 연초와 분기별 시점에 공개하기로 했다.
앞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유사한 의견이 제기됐으나 현재까지도 EVA 기준 성과금 산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최근 삼성전자 노조는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인사 및 성과 보상 제도의 대대적인 혁신을 요구하기도 했다.
삼성 5개 계열사 노동조합을 아우르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초기업노조)은 지난달 18일 성명을 내고 "현재 OPI 제도는 회사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방식으로 전락했다"며 "기본급을 높이고 초과이익성과급(OPI)이 진정한 성과급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연봉 구조를 개선하고 RSU(양도제한 조건부 주식) 같은 새로운 보상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밝혔다.
초기업노조는 "조직문화의 혁신은 인사 제도 혁신 없이 이뤄질 수 없다"며 "최소한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 폐지, 역할에 맞는 적정한 승진체계를 통해 동기부여와 연봉 인상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사 제도와 관련해서는 현재 신인사제도 이후 승진의 메리트, 보상 등이 사실상 전무해져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직원들이 찾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SK하이닉스의 역전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미 수년 전부터 능력있는 인재들은 동종업계 최고 대우를 해주는 SK하이닉스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 근무하는 30대 직원 A씨는 "사실 성과급 규모나 액수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는 '적어도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비슷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견이 많았다"며 "경직된 기업 문화와 복지제도의 후퇴도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날 "부서 간, 리더와 구성원 간 이기주의와 사일로를 제거하고, 비효율적이고 관습적인 업무 방식과 시스템은 과감하게 바꿔 개선해 나가자"고 말했다.
한 부회장은 이날 경기도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삼성전자 창립 55주년 기념식에서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과의 공동 명의 창립기념사를 통해 "변화 없이는 아무런 혁신도, 성장도 만들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임직원 모두가 사활을 걸고 본질인 기술 리더십을 더욱 강화해 한치의 부족함 없는 품질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과거 성과에 안주해 승부 근성과 절실함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 미래보다는 현실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경영진부터 냉철하게 되돌아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과 편리한 삶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세상에 없는 기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미래 차별화 경쟁력의 원천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