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버리지 말고 뿌릴 수 있도록”
폭염과 한파, 가뭄과 같은 이상 현상이 각지에서 빈발하는 등 기후 변화로 지구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심각성을 절감한 주요국들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에 ‘2050 탄소중립’이 국제사회 기본 기조로 떠오르고 있고, 농·축·수산 부문 역시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기후 변화로 농업 위기에 놓인 남아시아
탄소중립이 시대의 화두가 되며 시나브로 친환경 소재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바이오차(Biochar)’가 있다. 바이오차는 ‘바이오매스(Biomass)’와 ‘숯(Charcoal)’의 합성어로, 유기물인 바이오매스를 산소가 없거나 매우 적은 환경에서 고온으로 열분해해 유기물과 숯의 중간 성질을 갖도록 만든 탄소 소재이다. 폐기물을 인공 토양으로 만들어 다시 토양에 넣음으로 기존 토양에 매립된 폐기물의 분해를 가속화 할 수 있다는 게 기본 개념이다. 이렇게 생산한 바이오차는 토양 개량제와 혼합 상토 원료로 재활용되어 농지를 비옥하게 개선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나무나 가축분뇨, 농업부산물 등이 주요 원료로 쓰였는데 최근 들어 바이오차의 원료도 확대되는 추세다. 대표적인 것이 수산부산물인데, 이는 수산물의 포획·채취·양식 가공 등의 과정에서 기본 생산물 외에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뼈나 지느러미, 내장, 껍질 등을 말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수산부산물의 발생량은 수산물 생산량의 약 35%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대량으로 발생하는 수산부산물은 환경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 처리와 활용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기서 해법은 수산부산물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키틴과 키토산, 칼슘, 콜라겐 등 유용성분이 많아 재활용 자원으로서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스타트업 (주)엠에프엠(이하 엠에프엠)이 수산부산물을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활용해 기후 문제로 위기에 직면한 개발도상국에 기술사업화 기반 해결책을 제시하며 소셜 임팩트 창출을 도모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들이 주목한 건 ‘타이거 새우’에서 나오는 부산물(껍질)이다. 우리 식탁에도 흔히 오르는 인기 수산물인 ‘죄 없는’ 타이거 새우가 문제가 된 건 기후 변화 때문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바닷물 유입이 늘어나며 농지의 염도가 높아져 농업 환경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염분 침투로 농작물이 죽어 쌀 재배가 어려워지자 남아시아 지역민들은 다른 생업을 찾기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수출용 새우를 양식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양식장이 크게 늘어나며 이로 인해 ‘지구의 폐’ 역할을 하는 맹그로브 숲이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중이다. 여기에 대량으로 발생하는 껍질과 같은 부산물로 인한 환경 오염도 놓쳐서는 안 되는 문제다.
높은 염화 저항력으로 수확량 증가 기대
엠에프엠의 서영인 대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새우 양식장에서 버려지는 껍질을 정화 물질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타이거 새우 부산물의 경우 토양 염화를 막는 ‘키틴’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를 재활용해 환경문제 개선을 넘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엠에프엠은 새우 부산물 기반의 ‘키틴-바이오’차를 제조해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인도, 베트남 등에 공급하고 있다. 현지 토양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인공지능(AI) 설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기존 바이오차에 비해 염화 저항력이 높아 수확량 상승과 농민 소득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 분야 국내 권위자인 경상국립대 환경생명화학과 서동철 교수 연구진과의 협업을 통해 새우 부산물 바이오차 제조방법과 농업적 활용방안 관련 기술 이전을 받기도 했다.
서 대표는 “수산업과 농업 문제의 원포인트 솔루션을 제공해 기후 문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기술 고도화를 이뤄나가고자 한다”며 “이외에도 국내 토양 염화 문제나 토양을 넘어 수질과 공기 등 정화의 대상을 다각화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술적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새로운 도전에는 수업료가 필요한 법’
서울대 정치외교학도이던 서영인 대표가 창업가로 나서게 된 건 SK행복나눔재단의 청년 인재들을 위한 사회변화 실험터 ‘Sunny’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국내 거주 아시아 유학생과 한국 학생이 팀을 구성해 유엔(UN)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달성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를 위해 방문한 방글라데시에서 그는 기후 위기가 추상적인 게 아닌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걸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직접 목도한 복합적인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수단이 기술과 사업이라고 생각하게 된 그는 2022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기회(이익)’라는 뜻을 담아 ‘Margin for the Marginalized’의 약자로 엠에프엠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창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국내 각지를 다니며 갑각류 처리 기술자를 만나 기술을 전수받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경영자로서의 역량도 쌓아나가며 회사를 성장시켜 나갔다. 가능성을 인정받아 현대차 정몽구 재단 H-온드림 스타트업 그라운드 11기 대상, 푸드테크 기술사업화 우수사례 대상 및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서울 기후테크 콘퍼런스 서울특별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새로운 도전에는 수업료가 필요한 법이다’고 말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말처럼, 시련이 있을지라도 우선 직접 부딪혀보며 경험을 쌓고자 한다고 강조한 서 대표는 자신이 처음 창업을 시작한 계기가 된 방글라데시 주민들과 만났던 순간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가 우선 바라보는 지점도 회사의 외연적 성장보다 사회적 목표를 이루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신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기업이 되어 한국-방글라데시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는 숨기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탄탄대로’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던 진로 대신 창업이라는 도전을 택함에 있어 자신의 결정을 언제나 지지해주는 가족, 그리고 사업의 동반자인 방글라데시 출신 Andrua Haque COO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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