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배터리 기업들이 국내 소비자 사이에서 확산된 전기차 포비아에 전전긍긍 하고 있다. 대중화 과정에서 비싼 가격과 인프라 부족 등으로 겪는 일시적 수요 성장 둔화(캐즘)에 이은 겹악재다.
국토교통부는 9월 21일 전기차 배터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과 자동차등록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를 팔 때, 소비자에게 배터리셀 제조사, 형태, 주요 원료 등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정보를 표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천 아파트 벤츠 전기차 화재 이후
전기차 기피 ‘캐즘’에 겹악재
이번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과 자동차등록규칙 개정안은 지난 8월 1일 인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주차 중이던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가 갑작스럽게 폭발한 사건에서 비롯했다. 화재 차량이 전소한 것은 물론이고 주변 차량 140여대도 전소하거나 불에 그을렸다. 주차장 내부 전기·수도설비도 불타 아파트 주민 480여가구의 전기와 물이 끊겼다.
이어 같은달 17일에는 경기 용인 도로에 주차 중이던 테슬라 전기차도 하부 배터리 열폭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4시간만에 진화됐다.
그간 과충전으로 인한 전기차 화재 사건은 종종 있었지만 충전 중이 아닌 차량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벤츠 사건의 경우 배터리 제조사 문제가 대두됐다.
화재가 발생한 벤츠 EQE 350에는 중국의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것이 밝혀지면서다. 그간 벤츠 전기차에는 글로벌 배터리 1위 중국 CATL의 배터리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라시스는 중국 현지 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보한 세계 10위권 정도의 배터리 업체다. 이 업체는 지난 2021년 중국에서도 베이징차 전기차의 배터리 결함으로 대규모 리콜 조치된 이력이 있다. 국내 화재 원인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완성차·배터리 업체는 화재 여파로 줄어들 전기차 판매량 감소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건 이후 현대차, 기아, KG모빌리티, 테슬라 등 국내외 17개 브랜드는 자사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했다. 벤츠를 빼면 파라시스 제품을 쓰는 기업은 없었다. 대부분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거나 중국외 글로벌 사업 규모가 큰 중국의 CATL·BYD 제품을 썼다.
기업들 ‘안전 강화’ 홍보 나섰지만
8월 전기차 판매량은 뚝 떨어져
서울시가 화재 예방을 위해 과충전 전기차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개정을 추진하자, 현대차그룹이 이례적으로 반박하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다른 가전제품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전기차용 배터리는 100% 충전해도 안전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설계됐다”며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해도 배터리 두뇌 역할을 하는 BMS(배터리관리시스템)가 이를 차단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과학적 근거가 아닌 여론에 기반해 전기차 규제를 시행한다는 속뜻이 담겼다.
LG에너지솔루션은 BMS에 대한 기술 투자를 가장 활발히 하는 기업이라는 자료를 냈다.
LG에너지솔루션이 특허정보조사전문업체 WIPS와 함께 2018~2022년 특허수 기준 상위 10개 한중일 배터리 기업의 BMS 관련 특허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의 특허 수는 3,425개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3사의 BMS 관련 특허는 7,400여개로 전체(1만 3,500개) 약 40%를 차지했다. 2위 중국 업체들보다 1.2배 많고, 일본 기업들과는 3.5배 많은 수치다.
이 같은 노력에도 소비자 불안감은 단기간 해소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테슬라를 제외한 수입 전기차 판매량은 1,907대로 작년 동월 대비 34.8% 감소했다. 테슬라를 뺀 이유는 작년 8월엔 테슬라 물량 부족으로 출고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8월 테슬라 판매량은 2,208대로 집계됐는데, 이는 직전달인 지난 7월 2,680대보다 17.6% 줄어든 수치다.
국산차의 경우 현대차 4,800대, 기아 6,102대로 각각 전년 동월보다 38.1%, 146.7% 급증했다.
다만 통계를 뜯어보면 안도할 성적은 아니다. 작년에 없던 신형 전기차 편입 효과로 상승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8월 1,439대가 팔린 신차 캐스퍼EV 효과를 봤다. 주력 전기차인 아이오닉5는 30.7% 감소한 1,222대, 코나EV는 48.2% 줄어든 263대에 그쳤다. 아이오닉6는 47.3% 증가했으나 405대에 불과하다. GV60, GV70 등 제네시스 전기차는 판매량이 두자릿수대로 존재감이 거의 없다.
기아도 4,002대가 팔린 신차 EV3를 제외하면 마이너스 성장이다. EV6는 55.4% 감소한 599대를 기록했다. 또 다른 신차 레이EV는 전월대비 실적이 34.4% 감소한 923대에 그쳤다. EV9은 92대로 두자릿수대로 뚝 떨어졌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글 곽호룡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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