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과 유럽 뉴스를 보다보면
이렇게 대마초 부분 합법화에 대한 뉴스들이 뜨곤함
다들 알다시피 미국은 한국과 달리 주마다 법이 달라 대마초를 소지하고, 심지어 대마초를 피는게 합법인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 글에서는 언제부터 미국에서 대마 합법화를 추친했는지 그 배경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미국에서 60~70년대 히피 운동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토머스 K. 포케이드가 있음
이 형은 1945년생인데, 67년에 유타 대학 졸업하자마자 공군에 들어갔다가 1년도 안 돼 불명예 제대함
그렇게 나오자마자 혼자 경비행기 몰고 멕시코랑 콜롬비아, 자메이카를 다니면서 마리화나를 조달하기 시작함
말 그대로 히피판 해외 직구 개척자임
근데 이게또 재밌는데 이양반이 그냥 돈 벌려고 한 게 아니고, 히피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시작했다고 함
포케이드는 이 마리화나 사업으로 돈 좀 벌자! 해서 74년에 하이 타임스라는 마리화나 전문 잡지를 창간함
바로 이 잡지인데
이 잡지가 어떤 잡지냐면, 마리화나 재배법, 잎 건조와 사용법, 품질 비교, 가공법 등 ‘마리화나 백과사전’ 같은 잡지임
근데 또 한편으론 마리화나 합법화를 위한 운동이기도 해서, 창간 초부터 반향이 엄청났음
중앙 페이지(센터폴드)에 “플레이보이 패러디”라면서 마리화나 사진을 넣었는데 이거 한 장으로 무려 50만 부나 팔리게됨
그렇게 한창 잘나가던 도중 포케이드는 78년에 갑자기돌연자살함(마약단속국의 압수 수색(한국으로 따지면 검찰조사)을 피하기 위해 대량의 마리화나를 폐기한 뒤 빚에 쫓겨 자살했다함)
이후 잡지 팀과 친구들은 그 유명한 쌍둥이 타워중 가장 높은 곳을 빌려서 포케이드의 장례식을 히피 스타일로 진행했음
포케이드가 세상을 떠나자 케네디가 잡지를 이어갔고, 80년대 레이건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Just Say No) 캠페인 속에서도 계속 잡지를 발행하며 싸움과 방어를 동시에 해내고 있었음
그때 잡지 생존 원칙도 “우리 광고주들은 법을 어겨도 우리는 어기지 않는다”는 거였고, 그 덕분에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함
하이 타임스는 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카나비스 컵’이라는 대회를 시작했는데,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져서 90년대 이후엔 세계 최대 마리화나 축제가 됨
이때 젊은 재배자들이 새로운 품종을 대거 선보였고, 이 축제가 마리화나 인식 개선에도 한몫함
이후 2012년, 콜로라도와 워싱턴이 주민투표로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면서 케네디와 하이 타임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함
하이 타임스는 지금도 마리화나의 재배, 품질, 효능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미국 내 마리화나 합법화 운동에 큰 역할을 하고있고 맨처음에 나왔던 뉴스기사처럼 오늘날 마리화나가 많은 주에서 합법화된 배경에도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음
근데 여기서 중요한 점을 말하자면 포케이드와 케네디의 이야기는 마리화나 얘기만이 아님
마이클 케네디와 토머스 포케이드가 보여준 인생은 단순히 마리화나나 히피 문화의 상징을 넘어서, 진짜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음
이들은 필요할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개인의 권리가 제약받을 때마다 끝까지 싸웠음
특히 케네디는 헌법을 무기로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쳤고, 포케이드는 하이 타임스를 통해 금기시된 것들을 공론화하면서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줬음
지금 생각해 보면 하이 타임스가 그 역할을 했던 셈임
나는 마찬가지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정보도 나누고, 각자 의견을 내면서 더 나은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함
포케이드가 꿈꿨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공동체, 우리 주변에서부터 작은 실천으로 이어가면 의미 있는 변화 만들 수 있을 거임
한 마디로, 혼자 싸우는 것보다 같이 움직여야 진짜 변화가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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