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재원 A씨는 최근 반간첩법 혐의로 한국인이 처음 구속된 사실이 알려진 후 걱정이 많아졌다. 주변 주재원과 교민들도 고국에서 ‘괜찮냐’는 안부 전화를 받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가장 불안한 점은 어떻게 행동해야 중국 법에 저촉되지 않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라고 그는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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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고 있던 우리 교민 B씨가 지난 5월 반간첩법 혐의로 구속되자 현지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과거 삼성전자에 근무했던 그는 중국으로 건너와 현지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에 일했다. 이후 중국에서 이직을 알아보던 B씨는 지난해 12월 안후이성 허페이 자택에서 중국 당국으로부터 연행된다. 이후 창신메모리 정보를 한국쪽으로 유출했다며 반간첩법 혐의를 적용받아 정식 구속됐다.
우리의 국가보안법과도 같은 반간첩법은 지난해 7월 1일 개정안이 시행돼 적용 범위가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의도한 간첩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국가안보·이익과 관련한 문건·데이터를 주고받으면 법을 위반했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중국 현지에서 외국 기업, 교민들의 활동 범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개정안 시행이 1년이 지나도 우리 국민의 처벌 사례가 없어 걱정이 가신 줄 알았지만 결국 첫 구속이 발생하면서 다시 공포감이 번지는 분위기다.
반간첩법의 문제는 구체적인 법의 기준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행위를 하면 법에 저촉되는지 규정이 모호해 기업의 정상적인 정보 수집, 경영활동도 제약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이번에 구속된 B씨 사례에 대해 최소한 혐의점이라도 알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중국 재계·교민 사회의 주된 요구인 이유다.
반간첩법 공포는 기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중국 내 법조계의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공개된 반간첩법 사건은 총 61건인데 이중 3분의 1 이상인 23건이 기업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둘러싸고 각국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모호한 반간첩법을 이용해 중국 내 기업들을 옭아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중국 기술기업들과 협업하거나 단순히 중국 내부에서 첨단산업의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업무만 해도 자칫 법적 리스크를 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한·중 관계가 개선의 물꼬를 찾는 시점에서 터진 사건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양국은 올해 5월 열린 한·일·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고위급과 민간 교류를 확대하려는 분위기고 내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한국 방문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번 사건으로 한·중 관계 다시 경색되면 우리 기업의 중국 진출은 물론 양측 경제 협력이 위축될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우리 기업들도 경영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자체적인 움직임에 나설 예정이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모임인 중국한국상회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활동이 위축될 수도 있어 주의 환기가 필요하다”며 “국가안전국 같은 중국의 담당 부처에 설명회 개최 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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