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신한울 원전 착공식에서 원전 르네상스를 외치며 체코 원전 본계약에 기대감을 드러낸지 몇 시간 뒤 체코 반독점 당국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사업 계약을 일시 보류 조치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윤 대통령을 머쓱케 했다.
앞서 한수원을 중심으로 하는 '팀 코리아'는 지난 7월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자로 선정됐으며, 9월에는 윤 대통령이 직접 체코를 찾아 체코 대통령과 한-체코 원전동맹을 선언하며 원전 수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나 정상회담 후 약 한달여만에 본 계약 무산 위기에 놓인 것이다.
정부와 한수원은 경쟁에서 패한 업체들이 체코 반독점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한 만큼 정상적인 절차이며 본계약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 웨스팅하우스와 협의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최악의 경우 본계약이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덕근 산업통상부 장관은 내달 미국을 찾아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지만 11월 대선에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웨스팅하우스와 협상력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尹 "체코 본계약 직접 끝까지 챙길 것".. 몇시간 뒤 체코, 계약 일시보류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경북 울진 신한울 원전 부지에서 열린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 참석해 축사를 통해 "원전 르네상스를 맞아 1천조 원의 글로벌 원전 시장이 열리고 있다"며 "체코 원전 수주를 발판으로 우리 원전 산업의 수출길을 더 크게 열어나가겠다. 원전 생태계의 완전한 정상화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신한울 원전 건설 현장을 방문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한 바 있다.
신한울 1·2호기는 당시 윤 후보의 방문 이후 첫 번째로 종합 준공되는 원전이다. 신한울 3·4호기는 발전사업 허가까지 받은 상황에서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2017년부터 5년간 건설이 중단돼 '탈원전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나 윤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착공을 하게 됐다.
이날 윤 대통령은 "한울 원전 1·2호기는 40여 년 전 유럽의 도움을 받아 건설했는데 이제 팀 코리아가 체코에서 원전을 건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내년 본계약 체결이 잘 성사되도록 직접 끝까지 챙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절이 지난 후 윤 정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체코 반독점 당국이 자국 정부와 한수원의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사업 계약을 일시 보류 조치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이는 한수원과 입찰경쟁에서 패배한 EDF(프랑스전력공사)와 웨스팅하우스가 이의 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체코반독점사무소 관계자는 "체약 체결을 보류하는 예비적 조치가 이 경우 표준적 절차"이며 "이 문제를 어떻게 결정할지 시사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으나 본계약 성사를 앞두고 터질 것이 터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UAE 바라카원전 계약 당시에서 한수원이 자사가 특허권을 가진 원자로 설계기술을 활용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우리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에 거액의 기술료(약 13억 달러)를 지급한 바 있다.
이번에도 웨스팅하우스는 자사의 허락 없이 제3자가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실 "체코측과 이야기된 부분" 한수원 "내년 3월 계약 체결 차질 없이 진행할 것"
체코 원전발주사 대표단 60명 방한.. 최종 계약 세부안 협상
체코가 원전 신규 건설사업계약을 일시 보류 조치 한 데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31일 기자들에게 "반독점 여부에 대한 결과도 연내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며, 체코 측과도 미리 다 이야기된 부분"이라며 "체코 발주처도 해당 내용과 관계없이 논의를 이어가자며, '갈 길이 바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한수원도 같은 날 "내년 3월 계약 체결을 목표로 차질 없이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수원은 설명자료를 통해 "체코 반독점당국이 입찰참가자인 경쟁사로부터 진정을 접수해 관련 표준 철차에 따라 예비조치를 한 것"이라며 "향후 체코 반독점당국이 경쟁사의 진정 검토를 어떻게 결정할지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체코 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우리 입장을 상세히 설명하는 등 체코 측과도 긴밀히 소통·공조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체코 반독점 당국의 진정 심사 기간은 통상 2~3개월로 알려졌다. 앞으로 3개월간 심리 후 결정한다면 최종 계약을 체결하는 3월 전에는 반독점 당국의 결론이 나 계약 보류 결정이 취소될 것이라는 기대다.
체코 전력 당국이 내달 한국에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해 최종 계약을 위한 협상에 나선다는 것도 본계약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두코바이 원전 2기 건설 사업을 발주한 체코전력공사(CEZ)의 자회사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사(EDUⅡ)는 내달 10일께 원전 각 세부 분야 전문가들이 포함된 60여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한국에 보내 한수원 측과 세부 협상을 벌인다. 또, 방한 기간 새울원자력본부를 방문해 최신 한국형 원전 운영 및 건설 현장 시찰도 진행한다.
체코 발주사 측은 두코바니 신규 원전 발주 단계에서 사전에 자국 반독점 당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발주 업무를 진행해 탈락 업체들의 진정이 기각될 것으로 본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한수원도 "체코 경쟁 당국이 진정을 접수했기 때문에 관련 표준 절차에 따라서 예비 조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수원과 발주사 간의 계약 협상은 기존에 정해진 절차와 일정에 따라 내년 3월을 목표로 차질 없이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웨스팅하우스 원전 수출 협조 필요해져
한수원 "웨스팅하우스와 무관하게 원전 수출 가능" → "웨스팅하우스 도움 받아야" 입장번복
이런 가운데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상 없이는 체코 원전 수출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확인됐다.
현재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의 원전 기술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미국의 원자력안전법상 미국 법인만 수출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면서 웨스팅하우스가 미 정부에 신고하지 않으면 수출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지난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수원은 1997년에 맺은 라이선스 어그리먼트에 의해서 해외 수출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 어그리먼트는 살아 있다"며 체코 원전 수출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흘 뒤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입장을 바꿨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무관하게 우리가 독자적으로 신고하고 수출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해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통해 신고·승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시인한 것이다.
김 의원이 "우리가 원전 수출할 때마다 웨스팅하우스에 부탁해서 웨스팅하우스가 신고하거나 승인 받거나 이런 절차는 꼭 거쳐야 되는 건가"라고 묻자 황 사장은 "현재 절차대로 하면 그렇게 간다"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안덕근 산업통상부 장관은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을 매듭짓기 위해 내달 미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안덕근 장관은 지난 8월에도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미국을 찾은 바 있다. 당시 한미 간 원전 분쟁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오는 11월 5일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우리 정부의 체코 원전 수출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가 우리 정부를 배제하고 웨스팅하우스와 본계약을 추진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난번 보다 더 많은 기술료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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