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하고 러시아 시민권 취득 강요…선전전·정보통제도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우크라이나 남부에 살던 변호사 예브게니는 러시아가 고향 마을을 점령한 뒤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러시아 군인들은 그를 어두운 지하실에 가둔 뒤 일주일간 쇠 지렛대 등으로 구타했고 물고문도 했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그는 6주 동안 제대로 누울 수도 없어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해야 하는 처지가 됐고 회복하는 데 8개월이나 걸렸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30일(현지시간) 전직 수감자와 인권 단체, 우크라이나 정보당국 등 수십명을 인터뷰한 결과 예브게니의 사례처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식민지 말살 정책을 방불케 하는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유엔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5분의 1가량을 점령하고 있다.
2014년 강제로 병합한 크림반도와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차지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의 광범위한 지역이 모두 점령지로 이곳에는 40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 점령지에서 구소련 시절을 연상케 하는 100여개 이상의 감옥과 구금시설, 비공식 수용소, 지하실 등을 가동해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억압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고문을 하고 러시아 시민권 취득을 강요하는 한편 자녀들을 러시아로 보내거나 선전전, 재교육 등으로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을 말살해가는 것이다.
인권 단체와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군에 구금된 우크라이나인은 약 2만2천명에 달한다.
점령지에서 탈출한 우크라이나인들은 그곳에서의 삶이 마치 새장에 갇혀있는 것과 같았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여행이 제한되고 언제든 구금되거나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철저히 통제된 정보만 접하고 살아야 했다. 학교와 직장 등에서는 끊임없는 선전전에 노출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지친 우크라이나인들은 점령지의 집을 버리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에는 전쟁이 너무 급박하게 진행돼 탈출할 시기를 놓쳤거나 전쟁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하루에 50∼100여명씩 집을 떠나고 있다.
앨리슨 질 에드워드 유엔 고문 담당 특별보고관은 지난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고문이 국가가 승인한 체계적인 정책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시민자유센터(CCL)의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 대표는 "이런 폭력과 잔인함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며 "점령지를 통제하에 두려는 전술"이라고 지적했다.
마트비추크 대표는 인권 단체들이 우크라이나인이 구금돼있는 100개 이상의 시설을 지도화하고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에서도 학대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비공식 시설이 더 많고 납치된 뒤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례도 무수하다고 말했다.
NYT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에 영토를 내줘야 하는 평화 협정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맞서는 이유도 점령지의 우크라이나인들 때문이라고 봤다.
다만 NYT에 따르면 러시아는 군인들이 민간인을 고문한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eshiny@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