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발렌시아주와 그 일대에 내린 엄청난 폭우로 최소 9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실종되는 등 스페인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홍수 재앙을 겪고 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내린 폭우로 인해 갑작스레 홍수가 발생해 다리와 건물이 쓸려갔으며,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가거나 나무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극한 상황이 이어지며 일부 구조 활동이 정상적으로 전개될 수 없는 가운데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스페인 당국은 “실종자가 많아 사망자 수도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발렌시아에서 최소 92명의 사망자가, 발렌시아 서부 카스틸라 라만차주에서는 2명의 사망자가 보고됐으며, 남부 말라가에서는 71세 영국인 남성이 자택에서 구조됐으나 병원에서 숨졌다.
이번 홍수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73년 남동부를 덮치며 최소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역대 최악의 홍수 이후 스페인에서 가장 큰 규모다.
산체스 총리는 지난 3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기를 당부하며, 완전한 복구를 약속했다. 피해자들에게는 "스페인 전체가 당신과 울고 있다…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지 기상청에 따르면 발렌시아시 인근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인 치바에서는 30일 기준 단 8시간 동안 1년 치의 폭우가 내렸다고 한다.
한편 31일 아침 발렌시아에서는 스페인 군과 긴급 구조대가 투입돼 발코니와 자동차 지붕 위에서 구조되길 기다리는 사람들을 서둘러 구하고 있는 가운데 생존자들은 전날 밤 덮친 홍수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은 운전자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홍수로 거리와 도로가 강으로 변해버렸다.
발렌시아시 인근 파이포르타 지역 주민인 기예르모 세라노 페레즈(21)는 마치 “쓰나미처럼” 물이 고속도로를 따라 밀려오는 바람에 자신과 부모님은 살아남고자 차를 버리고 교량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급류가 자신들을 향해 흘러오고 있음을 깨달은 고속도로 위 운전자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주변보다 높이 솟은 중앙 분리대를 따라 탈출했다고 설명했다.
파트리시아 로드리게스(45)는 현지 ‘엘파이스’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아무도 미끄러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떨어졌다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 토레의 한 주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집을 잃은 친구도 있다면서, 30일 밤에 “차들이 물에 떠다니고 벽을 뚫고 몰아쳤다”고 설명했다.
한편, 발렌시아시 외곽 호르노 데 알세도의 콘수엘로 타라존 시장은 BBC 뉴스아워와의 인터뷰에서 단 몇 분 만에 수위가 1m 이상 상승했다고 말했다.
“물살이 너무 빨라서 목까지 물이 차오른 몇몇 사람들을 구조하고자 구조대를 불렀다”고 한다.
한편 스페인에서는 재난 관리 당국의 늦장 대응으로 시민들이 도로에서 벗어나거나 높은 곳으로 도망치지 못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일례로 국가 재난 시 가동되는 시민보호국은 현지 시간으로 29일 저녁 8시 15분까지 경보를 발령하지 않는데, 당시 치바와 여러 지역은 이미 최소 2시간 동안 침수된 상태였다.
발렌시아주 정부는 앞서 홍수,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처하고자 이전 정부에서 설치했던 ‘발렌시아 비상 대처부’를 폐지한 결정에 대해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군은 지난 30일 구조 활동 지원을 위해 군 병력 1000여 명을 투입했으나, 많은 이들이 도로 침수와 통신망 및 전력망 손상으로 인해 마을에 단절된 채로 남아 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스페인 구조대를 돕고자 ‘코페르니쿠스’ 위성 시스템을 가동했다고 밝혔으나, 주변 유럽 국가들도 지원 인력을 약속했다.
마르가리타 로블레스 스페인 국방부 장관은 30일 초 이 지역을 덮친 홍수는 “전례 없는 현상”이라고 묘사했다.
30일 기준 중동부 지역에서는 폭우가 잦아들기 시작했으나, 기상청은 비구름이 북동쪽 카탈루냐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스페인 내 다른 지역에서도 홍수 대비 및 대피를 촉구하는 기상 경보가 발령됐다.
한편 홍수를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나,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극심한 폭우 발생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폭우의 주된 원인으로 지중해의 따뜻한 바다로 찬 공기가 내려오는 ‘고타 프리아’를 지적했다. 스페인에서는 가을, 겨울에 발생하는 자연적인 기후 현상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구름이 더 많은 비를 머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소속으로, 지구 온난화가 이러한 자연재해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국제 과학자 집단을 이끄는 프리데리케 오토 박사는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해 조금만 더 기온이 높아져도 대기는 더 많은 수분을 머금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강우량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기후 변화로 인해 이러한 폭발적인 폭우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산업 시대가 시작된 이래 지구의 온도는 이미 약 1.1℃가량 따뜻해졌으며, 전 세계 정부가 배출량을 급격하게 줄이지 않는 한 기온은 계속 치솟을 것이다.
- 왜 홍수가 더 자주 발생할까?
- '엄청난 규모의 재앙'...중·동부 유럽, 기록적 폭우로 피해 속출
- 극한 호우의 원인? 점점 더 파괴적으로 변하는 '하늘에서 흐르는 강'
- 시간당 100mm 극한 호우, 이제 일상이 되나
Copyright ⓒ BBC News 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