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 당일. 길 위는 작은 세상 같다. 여성 러너와 남성 러너. 숨을 헐떡이는 청년, 기세 좋은 아저씨, 인내심이 강한 할머니. 젊은 아버지가 갓난아기를 실은 유모차를 밀며 내달린다. 그의 아내처럼 보이는 여성이 그 뒤를 잇는다. 시각 장애인은 파트너의 팔목에 묶은 리본에 의지해 질주한다. 어떤 다정한 이는 뒤처진 사람이 걱정돼 몇 번씩 고개를 돌린다. 앞만 보고 뛰어도 힘이 모자란 순간에도 자꾸. 그 모든 사람으로 거리 위엔 숨소리가 가득하다. 발소리가 빽빽하다. 바람 소리가 그 무수한 소음을 오선지처럼 잇는다. 그들을 조금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이어폰도 끼지 않고 달린다.
레이스 전엔 끈이 풀리지 않도록 리본을 두 번 묶어야 한다.
「
춘천에서의 두 번째 도전: 다시 10k!
」
지난 일요일, 그러니까 10월 27일. 춘천에서 열린 10km 레이스를 완주했다. 생에 2번째 10km 완주였다. 소요 시간 1시간 10분 55초. 작년 손기정 마라톤보다 2분 늦은 기록이다. 경기 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다. 3일 전부턴 목에 통증이 생겨 정형외과에 갔더니 주사를 4대나 놔줬다. 목선을 따라 푸른 물이 들었다. 경기 당일엔 두통과 복통이 심해 시작 전까지 진통제를 여러 알 삼켜야 했다. 그런데도 7km 지점에서부턴 오른쪽 골반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완주했다. 느리게 달려도 결코 걷지 않았다. 이겼다. 그 날 그 길 위에 선 모두가 승자였으니까. 결승선에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응원이 쏟아졌다. 그 거리에선 모두 아이로 돌아간다. 하품만 해도 모두를 기쁘게 하는 아기처럼 달리기만 하는데 넘치는 사랑을 받는다. 그들은 나를 위해 기꺼이 종을 울렸다. 깃발을 흔들었다. 함성을 보냈다. 아는 얼굴이 보였다. 이미 경주를 마치고 들어온 동료와 후배 기자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4달간 우리에게 러닝 세션을 제공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나이키였다. 우리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였다. 그 시작은 1년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도 뛸 수 있다고요?
2023년 9월, 나이키 러닝 크루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3개월 훈련을 거치고 손기정 마라톤에 출전하잔 계획이었다. 누구나 러너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의심스러웠다. 제대로 뛰어 본 적도 없고, 운동을 딱히 좋아하지도 않으며, 주로 집에 머무는 ‘실내인간’. 그것도 웬만하면 누워있는 ‘와식인간’. 그게 나였다. 그런데도 나이키의 제안을 승낙했다. 달리기의 힘을 믿어서가 아니리라 믿고 싶어서. 손기정 마라톤 경기일은 11월 19일. 초겨울이었다. 나는 겨울이 두렵다. 좋거나 싫은 게 아니라 두렵다. 나를 타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춥고 어두워지는 계절에 나는 곧잘 다른 사람이 된다. 말수와 외출, 표정이 줄고 잠과 눈물이 많아진다. 겨울임을 잊기 위해 오래 꿈속에 있고 싶었고, 다시 눈을 뜨면 여태 겨울이라 울었다. 콱 죽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딱히 살아있고 싶지도 않은 날들. 나는 겨울의 끝에서 매번 목숨을 부지했다. 그 패턴을 끊으려면 더 늦기 전에 뭔가를 시도해야 했다. 그게 달리기였다.
춘천에서 10km를 완주하고 받은 메달.
러닝 세션 후 함께 모여 다 같이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
에펠탑에서 매일 점심을 먹었다는 기 드 모파상처럼
」
러닝 훈련은 일주일에 한 번. 나이키 인피니티가 발이 돼줬다. 촘촘한 니트 소재로 상단을 완성돼 발을 유연하면서도 안정적으로 감싸는 모델이다. 매주 수요일, 스무 명 남짓한 그룹에서 맨 앞줄에서 달렸다. 애초에 기초 체력이 부족해 남만큼 하면 남과 같이 뛸 수가 없는 실력이었다. 공식적인 러닝 세션이 시작하기 전부터 홀로 훈련에 돌입했다. 매일 오전 최소 30분에서 한 시간을 꾸준히 달렸다. 맨 앞줄에서 뛴 건 경쟁하고 싶지 않아서다. 앞에 있으면 누구의 뒤통수도 보이지 않으니까. 에펠 탑이 너무 싫어서 파리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장소인 에펠탑에서 매일 점심을 먹었다는 기 드 모파상처럼 뒤처지는 게 싫어서 제일 앞 줄에서 달렸다. 그룹 러닝엔 묘한 힘이 있다. 함께 뛰면 더 빠르게, 더 멀리 달릴 수 있었다. 피곤이 묻은 얼굴로 온 사람들조차 떠날 땐 기운이 넘쳐 보였다. 혼자, 또 같이 3개월, 숨이 길어지고 다리가 단단해졌다. 그렇게 작년 손기정 마라톤에 출전했다. 첫 10km를 뛰고 감격에 겨워 운다고들 하는데, 나는 울지 않았다. 딱 준비한 만큼 달렸으니 즐겁고 뿌듯했다. 끝난 뒤엔 배가 무진장 고팠다. 경기가 끝나고 버스를 탈 때도, 역삼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탄수화물로 가득한 식사를 하면서도, 졸리고 흡족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갈 때도 내내 메달을 목에 걸고 있었다.
한강 러닝 후에 단체 사진.
페가수스 운동화는 나이키 러닝화의 역사책이나 다름없는 운동화. 지난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41번의 크고 작은 진화를 거듭했다. 신었을 때 부드럽고, 쿠션이 적당해 나 같은 초보자에게도 딱이다
「
2024년, 여전히 길 위에서
」
작년에 이어 다시 나이키와 뛰게 됐다. 첫 세션 전에 호그와트 입학서처럼 집으로 새하얀 페가수스 41 한 켤레가 도착했다. 새 신을 신고, 내겐 은인 같은 이장섭 코치님을 매주 화요일마다 만났다. 러너 친구들도 더 많이 생겼다. 함께 땀 흘리는 사이는 급속도로 친해진다. 8시부터 모여 40분가량을 뛰고 나면 그 뒤로 수다가 길어져 늘 자정에나 겨우 집에 갔다. 10km를 완주해서 올해는 자연스럽게 20km를 뛰게 될 줄 알았는데,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거리를 완주했다. 올해는 혼자 달리는 연습이 훨씬 부족했으니 당연하다. 다만 작년에는 10km를 완주하고 일주일은 빌빌댔는데, 올해는 3일 만에 리커버리 런을 뛸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어느 날의 기록보다 중요한 건 내가 그새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올해 동료들이 워낙 잘 뛰는 바람에 늘 꼴찌로 밀려나기에 십상이었지만, 나이키는 내게 올해 러닝 세션 출석률 1위가 나였다고 속삭였다. 기록보다 값진 영광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소소한 변화도 생겼다. 근육을 쓰는 방법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고, 잘 지키진 못해도 건강하게 먹으려 노력한다. 야근을 하면 금세 무너질 것 같은 몸도 운동을 통해 회복한다. 겨울은 여전히 두렵고 겨울과 맞서 이기는 법을 아직도 알지 못 하나, 대신 견디는 법을 점차 배워간다. 곧 겨울이 다가오니 두려운 만큼 설레기도 한다. 그 모든 변화의 시작이 달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