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리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아니카 리(Anicka Yi)의 전시는 생물학, 기술, 예술이 융합된 미래 생태계를 탐구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생명체와 기계적 요소가 결합된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과 공존 가능성을 제시하며, 특히 기술적 생명체와 감각적 경험을 강조해 관람자들에게 새로운 생태적 시각을 제공한다. 리의 작품은 생명과 비생명,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며, 관람자들이 이 새로운 관계를 열린 시각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개념은 포스트휴머니즘일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철학적 개념으로,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기술과 생명체, 비인간 존재와의 복합적 관계를 다룬다. 생태 위기와 기술 발전,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이 개념은 인간이 더 이상 독립적 개체로 존재하지 않음을 일깨워 주며, 생태계와 기술의 네트워크 속에서 상호 연결된 존재로서의 역할을 재고하게 만든다.
미술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은 특히 인공지능, 생명공학, 로봇 공학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을 반영하며,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작업으로 나타난다. 아니카 리의 작품은 이러한 포스트휴머니즘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기술이 얽혀 있는 새로운 생태적 존재 방식을 시각화한다. 이를 통해 리는 현대 사회의 생명과 윤리, 기술적 변화에 대한 성찰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에어로브 (Aerobe, 2021)’는 생물학적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기계적 생명체로, 생물과 기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로 탄생했다. 이 작품은 관람자에게 생명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와의 공존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며, 생명과 비생명,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음을 일깨워 준다. 리의 이러한 작업은 현대 사회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윤리적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작품인 ‘육체의 기억 (The Memory of the Body, 2016)’은 미생물과 인간 체취에서 비롯된 유기적 잔여물을 활용하여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가 모호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인간이 자연과 긴밀히 얽힌 존재임을 표현하며, 생명체와 비생명체가 상호작용을 통해 다층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 리는 관람자에게 생명을 정적인 개념이 아닌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이해할 필요성을 상기시키며,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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