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기준금리는 내리기보다 올리기가 어렵다. 금리 인상에는 국민과 기업 등 각 경제주체의 고통과 저항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인사를 '비둘기파'라 부르고 금리 인상파를 '매파'로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저항과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인플레이션 등 더 큰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중앙은행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은 최근 몇 년간 인플레와의 치열한 전투를 벌여왔다. 국민의 동참과 인내를 설득하며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려 간신히 물가를 잡았다.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높였던 금리를 다시 정상화하는 이른바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전환)의 첫걸음을 뗐지만 조기 인하를 향한 앞길에 복병이 산적하다.
미국 대통령 선거후 예상되는 감세와 재정적자 확대는 금리 상승 요인이다. 미국이 중국 등의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물리면 물가가 다시 오를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관세 인상으로 인해 물가가 4%대로 다시 치솟을 것으로 우려한다. 물가가 다시 오르면 향후 연준의 금리인하 기조에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최근 늘어난 미국 일자리 숫자가 전망치를 넘어서는 등 견조한 경제지표가 나오면서 연준의 9월 금리인하 폭 0.5%포인트(p)가 과도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기축통화국 정책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원/달러 환율이 한 달 새 80원가량 급등해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졌다. 환율 상승은 자금 유출 우려를 키우고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국내 소비자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1천100조원을 훌쩍 넘어선 가계부채는 금리를 내리기 어렵게 만드는 최대 복병이다. 한은이 누차 밝혔듯 앞으로 금리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다.
상반되는 대내외 여건의 딜레마 속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중앙은행의 숙명이다. 연준의 임무는 물가안정과 완전고용, 한국은행의 임무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다. 결코 한 방향의 정책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금리 인하가 늦었다는 실기론(失期論)으로 한국은행의 발목을 잡기엔 우리 경제 앞길에 놓인 현실이 너무나도 엄중하다. 미 대선후 바뀔 경제정책과 중국 경제 부진으로 인한 수출 타격, 달러 강세 등 금융시장 불안, 우크라이나·중동전쟁 악화 등 불안 요인을 이루 다 꼽기도 어렵다. 복잡다기한 대내외 여건 속에서 한국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최적의 정책조합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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