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고대생'의 대학 졸업장은 무사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조치하라"는 교육부의 방침에도 고려대학교는 입학취소 조치를 5년간 미루고 있다. 교육부도 할 말 없다. "엄중히 관리·감독할 예정"이란 장담이 무색하게, 입학취소 여부를 확인도 안 하고 세월만 보냈다.
교수 엄마의 제자들이 만들어준 '가짜 스펙'으로 대학에 부정하게 입학한 이해슬(가명). 교육부와 고려대가 약 5년 동안 나란히 손 놓고 있는 사이, '가짜 고대생'의 입학허가 취소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부는 "입학허가 취소 권한은 학교의 장에 있다"며 학교로 책임을 미뤘고, 고려대는 "법원의 확정판결 이후 조치를 취하겠다"며 또 미루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미루기'가 부정입학자에 대한 후속조치를 막고 있다.
교육부는 2019년 3월 특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수희(가명)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의 딸 입학비리 관련 특별조사였다.
조사 결과, 엄마 이 교수가 '치과의사 딸 만들기'를 위해 대학원생들을 동원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교수는 고등학생 딸 이해슬(가명)이 참가하는 학술대회용 연구보고서 및 발표자료(PPT)를 대학원생들에게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해슬은 그 덕에 '우수청소년학자상'을 받았고, 그 스펙을 활용해 2014년 고려대 생명과학부에 입학했다.
교육부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고려대에 행정상 조치를 요구했다.
"2014학년도 이해슬 학생의 입시 전형자료 활용 조사결과를 통보하오니, 참고하여 향후 수사결과에 따라 후속조치를 하기 바람"
유은혜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특별조사 결과, 법령 등 위반이 확인된 사실에 대해서는 관련자와 관련 기관에 조속히 처분조치가 이행될 수 있도록 엄중히 관리·감독할 예정이다."
하지만 교육부 특별조사로부터 약 5년이 흐른 현재, 고려대는 아직도 해슬의 입학취소를 결정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 교수 엄마 덕에 '가짜스펙'… 고려대, 입학취소 안했다)
"해당자(이해슬)에 대한 입학허가 취소/미취소는 심의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사안은 법원의 최종 판단을 근거로 본교 학칙과 규정에 의거하여 처리할 예정입니다."(2024. 8. 29. 고려대 입학처 답변)
왜 아직까지 해슬의 입학취소 결정을 못하는 걸까. 고려대의 설명은 이렇다.
"2019년 교육부 특별조사 발표 당시, 서류 보존기한(5년)이 지나 해슬의 입시자료(2014학년도 입학)가 없었습니다. 없는 자료를 근거로 판단할 수 없으니, 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려서 그 결과에 따르겠다는 입장입니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예슬의 입시자료가 폐기돼 부정행위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예슬의 부정행위는 고교 시절 수상 스펙을 만들면서 일어난 일. 입시자료에 기재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과정상의 부정'은 교육부 조사와, 경찰·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통해 이미 확인됐다. 고려대가 새삼 부정행위를 다시 판단할 이유도 부족하고, '폐기된 입시자료'를 이유 삼아 그걸 미룰 명분도 약해 보인다.
검찰은 2019년 5월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이 교수를 재판에 넘겼다. 딸 해슬도 함께 기소됐다. 1심 법원은 지난 7월, 이 교수에게 징역 3년 6개월, 딸 해슬에겐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고인 이해슬은 피고인 이수희 교수로부터 위 자기소개서 및 첨부서류들을 넘겨받아 이를 2013.09.05경 '2014학년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과학인재특별전형에 입학자료로 제출하여 최종합격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위계로써 고려대학교 소속 교수인 피해자 한○○, 정○○ 등 1차 서류전형 심사위원들의 입학심사 업무를 방해하였다."(1심 판결문 중)
해슬이 고려대에 입학한 뒤, 엄마 이 교수는 딸의 치의학전문대학원(치전원) 진학 준비에 자신의 제자들을 또 다시 활용했다. 대학원생들은 이 교수의 지시에 따라 해슬을 위해 SCI급 논문을 대신 써줬다. 이 교수는 이들에게 실험결과 수치를 조작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들은 해슬의 봉사활동까지 대신 해줬다.
해슬은 단독저자로 '대필 논문'을 국제학회지에 투고했다. 교신저자는 F 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 F 교수는 이 교수의 성균관대 약대 동문이다. 해슬은 2018년 서울대학교 치전원에 합격했다.(☞ 관련 기사 : 논문도 봉사도 '대타'… 가짜 고대생, 서울대도 속였다)
2019년 교육부의 특별조사 결과 발표 직후, 이 교수 모녀와 관련된 세 대학 중 두 곳은 발 빠르게 후속조치를 이행했다. 교육부는 그해 3월 이미 성균관대에 이 교수 중징계(파면)를 요구했고, 서울대 치전원도 같은 해 8월 딸 해슬에 대해 입학취소를 결정했다.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어야 한다"는 고려대와 달리, 성균관대와 서울대는 모두 교육부 특별조사 결과 발표와 검찰의 기소를 전후해 조치했다. 심지어 지난 7월 1심 유죄 판결이 난 이후에도 고려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장관까지 나서 "엄중한 관리·감독"을 약속했던 교육부는 뭘 했을까?
교육부 인재선발제도관 담당자 A는 지난 22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고등교육법에 따라 입학허가 취소 권한은 '대학의 장'에게 있다"면서, "최종적으로 대학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자가 "그동안 고려대 쪽에 이해슬 입학허가 취소 여부를 확인하고 있었는지" 묻자, A는 이렇게 답했다.
"민원이 들어왔다고 해서 교육부가 (사례별로) 각각 대학에 이 학생의 입학이 취소됐는지 여부를 따로 확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장관은 "엄중한 관리·감독"을 약속했는데도, 막상 교육부는 지난 5년간 이해슬에 대한 입학취소 여부를 확인한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운 나쁘게(?) 걸리지만 않았더라면 성공으로 끝날 뻔한 교수 엄마의 '치과의사 딸 만들기.' 올바른 의료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온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 박지용 대표는 교육부의 소극적 조치를 이렇게 비판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후속조치를 하라는) 교육부 권고에도 고려대가 지난 5년 동안 불응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교육부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후속조치를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 또한 (이해슬의 입학취소 결정 문제를) 관료주의적으로 대응하는 듯해 아쉽습니다. 1심 판결만 약 5년 걸린 사건을, 3심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법원의 판결에 책임을 넘기겠다는 것은,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고 봅니다."
고려대가 그동안 입학취소 결정을 내린 적이 없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고려대에는 2022년 이후 두 건의 입학취소 사례가 있다.
먼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조민 씨 사례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딸 조민 씨는 2022년 2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입학이 취소됐다. 당사자 조민 씨가 아닌, 모친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유죄 판결을 받은 데 따른 조치였다.
셜록이 지난 2022년 '유나와 예지 이야기'로 보도한 미성년 부당 저자 최지희(가명)도 고려대 의과대학 입학이 취소됐다. 최지희는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아버지를 이용해, 아버지 동료 교수의 SCI급 논문 두 편에 부당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관련기사 : <셜록 보도 '논문 부정' 고려대 의대생.. 결국 '입학취소'>)
이들에게 입학취소 결정이 내려질 때도, 이해슬은 '고려대 졸업장'을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 '가짜 스펙'으로 얼룩진 졸업장을 가지고 그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그의 가짜 졸업장을 고려대와 교육부는 언제까지 두고만 보고 있을까.
기자는 지난 9월 이 전 교수와는 잠깐 통화를 나눴다. 이 전 교수는 "기자"라는 소개에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후 10월 21일까지 12번에 거쳐 전화를 걸었지만, 이 전 교수는 받지 않았다. 이 전 교수는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 전 교수 딸 해슬에게도 접촉했다. 지난 16일 입시비리 사건 관련 항소심 담당 법률대리인을 통해 인터뷰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해슬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지난 17일, 모녀의 주소지로 찾아갔을 때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셜록은 대필 논문의 교신저자 고려대 생명과학부 F 교수도 찾아갔다. 지난 17일, 고려대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기자는 F 교수에게 다섯 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반론을 받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해슬이 대학원생들의 '대필 논문'을 단독저자로 투고하는 데 역할을 한 교신저자 F 교수는 징계를 받았을까?
고려대는 2019년 9월 교내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 결과를 교육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고려대 커뮤니케이션팀(홍보팀)은 F 교수의 징계 여부에 대해서는 "특정 교원에 대한 개인정보라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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