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서울대 딥페이크 주범에 검찰 구형과 같은 징역 10년 선고
늦은 입법에 '솜방망이 처벌 여전' 지적도…양형기준 손질 필요성도 제기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법원이 이른바 '서울대 딥페이크'(서울대 N번방) 사건의 주범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과 같은 수위의 형량을 선고한 것은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법원 역시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신기술 범죄에 경종을 울릴 필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법원이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의 범위를 규정한 양형기준이 상대적으로 관대하고, 그 토대가 되는 법정형 강화 역시 범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이후에야 뒤늦게 입법이 이뤄져 '무딘 칼'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 법원, 검찰 구형대로 선고…피해자측 "경종 울린 판결" 환영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박준석 부장판사)는 30일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의 주범 박모(40)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자신을 대상으로 합성된 사진이 유포될 것을 우려하며 앞으로도 끝없는 불안감에 살아갈 것이라 피해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피고인을 엄중히 처벌해 법과 도덕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면전에서 "극히 혐오스럽고 저질스럽다", "변태적인 범죄", "경악스럽다", "인격 말살" 등의 표현을 쓰며 범행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
이날 재판부의 선고 형량은 검찰의 구형량과 같다. 통상 형사사건에서 법원은 검찰의 구형량보다는 다소 낮은 형을 선고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공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반성의 뜻을 보인 것을 두고도 "너무 늦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공동법률사무소 이채 조윤희 변호사는 선고 후 "이러한 범죄가 우리 사회에서 더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며 "피해자들이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 양형기준 상대적으로 관대…법원 "충실히 반영해 검토"
다만 딥페이크 사건에 대한 엄벌 기조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양형기준 자체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형기준은 일선 판사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벗어나 판결하려면 판결문에 사유를 기재해야 하므로 합리적 이유 없이 위반할 수는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0년 기존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세분화해 딥페이크 등 허위영상물의 반포 범죄 등에 대한 별도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나 허위영상물을 반포했을 경우 징역 6개월~1년 6개월, 가중돼도 10개월~2년 6개월에 그쳐 심각성에 비해 양형 기준이 낮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8월 이 사건의 공범인 다른 박모(28)씨에게 검찰의 구형(징역 10년)보다 낮은 징역 5년을 선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박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본 재판부는 가장 형이 무거운 상습허위영상물 편집·반포죄(징역 7년6개월)에 경합범가중(1.5배)을 적용하면 법률상 최고 징역 11년 3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었다.
다만 양형기준을 적용하면서 박씨에게 선고할 수 있는 권고형의 상한은 6년 5개월 15일로 대폭 내려갔고, 일부 피해자와 합의했으며 전과가 없다는 정상을 반영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날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주범도 법률상으로는 최고 징역 45년까지 선고할 수 있었지만, 양형기준을 적용하면 권고형의 상한은 징역 15년 7개월 15일로 줄어들게 됐다.
양형기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7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범죄에 대해 즉각적으로 양형기준에 반영하기는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상황 인식을 공유해서 충실히 반영하도록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 한발씩 늦는 법안…피해자 생긴 뒤 공론화돼야 움직이는 국회
디지털 성범죄는 날로 교묘하고 변화무쌍하게 진화하는데, 이에 대응할 법안을 입법해야 할 국회의 대응은 너무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는 2020년 6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딥페이크 처벌법'이라 불리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를 개정했다.
그러나 법 개정 전 2018년 한양대에서 불거진 딥페이크 사건은 이미 법망을 빠져나간 뒤였다.
이 사건 피의자는 구체적인 처벌법이 없어 음란물을 의뢰해 제작한 혐의(음화제조교사)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고, 형사보상금을 달라는 신청까지 했다.
2020년 개정된 법률의 처벌 수위도 신종 디지털 성범죄의 해악을 알리고 경각심을 주기엔 무디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법에 따르면 허위 영상물을 편집·합성, 가공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양형기준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이 이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
제작자만 처벌하고, 이를 소비하는 시청·소지자에 대한 처벌 기준이 없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결국 국회는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등 피해자가 생기며 공론화된 이후에야 지난달 부랴부랴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법률을 개정했다.
법정형을 징역 5년에서 7년으로 상향하고, 유포의 목적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제작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딥페이크물을 유포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한선도 설정했다.
이와 더불어 소지·구입·저장·시청죄도 신설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이미 재판에 넘겨진 서울대 딥페이크 피고인들은 강화된 법률을 적용받지 않는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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