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우려 등으로 다수의 제조사가 협조가 안 되기 때문에 제품을 역으로 추적하는 방법인 리버싱을 통해 데이터를 일일이 파악하고 사건·사고의 단서를 찾는 데 수일이 걸린다.”
리버싱은 리버스 엔지니어링 또는 역공학으로 불린다. 이는 장치 또는 시스템의 기술적 원리를 분석하는 과정으로, 제조사가 경쟁사의 제품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같은 기술을 풀리지 않는 범죄수사, 사건·사고 감정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 29일 강원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디지털포렌식 연구실에서 정도준 공업연구관은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하드디스크는 타버리는 순간까지 저장돼 발화 시점이 언제인지 파악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하면서 “최근 기계가 계속 업데이트되고 저장 용량도 커지면서 디지털포렌식 등 분석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미래범죄 대응역량 강화를 위한 원천기술과 첨단기법을 지속 연구·개발하고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보이스피싱 음성 분석 모델인 K-VoM을 내놨고, 마약류 감정 효율성 제고를 위한 샘플링 기법도 만들어 감정 기간을 30% 이상 단축했다.
올해부터 실종아동을 찾는데 형제·자매 DNA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의미 있는 감정 결과도 얻었다. 김응수 국과수 유전자과 과장은 “실종아동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2촌 가족군을 대상으로 실종아동군과 감정을 했고 혈연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후보 14건을 추리고, 그 중 유력한 7건을 경찰에 알렸다”고 했다. 향후 국과수는 조부모·조손과 3촌 이상의 관계 확인을 위한 DNA 분석 방법도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첨단 감정 기법 외에 고전적 방식의 감정이 주효할 때도 있다. 지난 7월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발생한 역주행 사고의 핵심 증거는 운전자의 신발에 남은 가속 페달 흔적이었다.
자살 원인 규명이 필요한 경우, 국과수에서는 법심리부검 감정을 수행하기도 한다. 법심리부검은 유서, 주변인 진술, SNS 기록 등 수사 기록 일체를 받아 방대한 양의 자료 속에 숨겨져 있는 자살자의 심리 상태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대상자의 자·타살 가능성을 추론하고 자살에 영향을 미친 중요 요인들을 도출한다.
법심리부검 감정 업무를 수행하는 건 국과수가 유일하다. 이예람 중사 사건이나 서이초 교사 사건 등을 거치며 최근에 감정의뢰가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법심리부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전담 인력이 부족한 점은 한계로 꼽힌다. 국과수 관계자는 “현재 1~2명이 법심리부검을 담당하고 있는데 한꺼번에 의뢰가 들어오면 감정 분석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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