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돌연 사임한 이유에 대해 "안창호 위원장님이 생각하는 인권관이 국제 사회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런 분을 보좌할 사무총장으로서 저는 적임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박 사무총장은 30일 오전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안 위원장님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성) 발언에는 참혹함을 느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2년 9개월 동안 직을 수행해 온 박 사무총장은 지난 28일 퇴임식을 마쳤으며, 인권위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는 31일까지 근무한다.
박 사무총장은 사임을 결심한 시점에 대해 "(안창호 인권위원장) 인사청문회를 보면서부터 사실은 먹기 시작했다"며 "'인권위의 기본적인 입장과 많이 다르시다. 제 생각과 너무 멀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 달 초 취임한 안 위원장은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며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항문암·A형 간염 같은 질병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우려하셨던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체감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는 "다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면서도 "많은 순간 답답했다"고 했다.
그는 일례로 "안 위원장님 들어온 이후 단 한 차례도 아직 상임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는데 이유는 두 상임위원(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이 자리 배치를 바꾸지 않으면 상임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 것 같다. 왜 사무처 따위가 위원들과 자리를 같이 하냐 이런 요구였다. 이런 부당한 요구들이 인권위를 흔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송두환 위원장님은 온몸으로 막아주셨다"면서, 반면 "(안) 위원장님께 일단 명분 없는 주장이니 상임위를 열어야 한다고 말씀도 드렸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3인으로 운영되던 소위원회를 4인 체제로 바꾸고 위원 3명 이상이 찬성하지 않으면 진정 사건을 기각할 수 있게끔 인권위원 다수파가 규정을 변경한 데 대해선 "법원에서도 이미 판단이 끝났다. 기존 (3인 소위원회 체제) 인권위의 판단이 맞다는 결정을 했다"면서 "운영규칙을 바꾸면서 그 원칙을 깨버렸다는 것은 저는 합의제 정신 자체를 깨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정인의 이익에 부합하냐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런 결정을 했는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마지막 보루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기각 하나 각하 하나도 신중히 판단해 왔다. 앞으로 오늘을 역사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날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 취임 이후 인권위에 대해 "인권위 창립 이후 권고는 최악의 수치로 떨어졌다. 접수 자체가 1천 건 이상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국민들의 기대가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권위 문을 두드리고 싶던 사람들도 인권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포기하지 않겠느냐"면서 "과연 이 정부가 저는 인권에 대한 기대가 있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서 벽이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문제는 파도가 밀려올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은신처조차 찾을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바로 그런 우려 때문이라도 조금 더 버티셨어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는 지적에는 "기본적으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안창호 위원장님이 생각하는 인권관이 국제 사회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런 분을 보좌할 사무총장으로서 저는 적임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특히 "두 위원들(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의 그 비합리적인 요구를 온몸으로 막았던 송두환 위원장님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에 GANHRI라고 국가인권기구들의 세계연합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거기에 특별 심사 대상으로 어쨌든 저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며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보고 있는 NGO들이 국제 사회에 청원해서 그런 기로에 있다.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등급 보류란 불명예를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가인권위원회지부는 지난 28일 전원위원회가 소위원회 운영 규칙 변경안을 가결시킨 데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이후 23년간 견지해 왔던 합의제 정신이 소멸된 날"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위지부는 지난 29일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상 '반 발짝' 나아갈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를 합의제 기구로 만든 목적은 그 어떠한 정권이 오더라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인권을 기준으로 구성원 간 합의하라는 의미"라며 "(소위원회 운영 규칙 변경은) 인권 판단 기준이 아닌 국가인권위원의 성향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가 해 왔던 결정이 쉽게 번복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결정"이라고 했다.
또 "의결 방식의 변경은 위원회 중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공청회나 토론회 등의 민주적인 숙의 절차 없이 다수의 표결로 강행되었다"며 "'민감한' 사건에 대하여 소위원회에서 선택적으로 부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새로운 해석'으로 의결한 다른 모든 사건의 '위법성'을 추인해주는 결과를 낳았다"고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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