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작업을 하면서 ‘예술’을 한다고 입 밖으로 말해본 적은 거의 없다. 내가 하는 게 예술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작업과정에서 미적인 것에 크게 의의를 두고 있지 않고(작업을 제작하며 미적인 부분을 고려한 선택은 하지만 처음부터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아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예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유치함을 감각한 지도 꽤 되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단어는 유치함을 넘어서면 엄청난 반대 항을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것은 격식 있는 학문으로서의 예술인데 어쩌면 그것이 추구하는 예술과 조금 더 닮아있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다다를 수 없기에 예술이라는 단어는 또다시 목구멍을 넘지 못한다. 유치함과 격식의 학문이라는 양 끝만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를 조금은 거부하고 감각하는 순간들을 마비시키며 작업을 이어 나갔던 듯싶다.
작업을 여러 해 하면서 많은 기획서와 공모 지원이 있었고 미선정과 탈락이 있었다. 여러 과정 아닌 과정들 속에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다른 곳을 향해 걷는다고 느끼는 경험이 잦아지면서 새삼스럽게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종종 갖고 있다. 내가 하려고 했던 것을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어쩌다, 지금, 왜 예술을 하고 있는 걸까.
카카오톡에서 예전 생활기록부를 떼 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중학교 시절의 생활기록부를 열어보았다.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지금은 예술을 하고 있다. 아마 생활기록부라는 것을 고려하여 거짓 꿈을 적었을 확률이 더 높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실은 알 수가 없다.
내가 믿는 예술은 무엇일까. 내가 믿는 예술이라는 것은 분명 힘이 있는 것이었다. 시각적은 아름다운 이상의 의미가 있었고, 인생에서 어떠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러한 인상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아주 희미한 잔상에 대한 기억만이 남아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을 테니 아마 그것을 발견했고 그래서 시작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길에 발걸음을 올려놓으며 걷기 시작했는데, 문학과 삶의 차이처럼 그 길은 녹록치 않다. 길이 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믿었던 예술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예술이 자리는 잡았다. 사라지던 예술의 멱살을 잡고 끌고 와서 다시 한 번 똑바로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벌써 저 멀리 떠난듯하다. 이제는 내 예술을 내 앞에 앉혀두고 샅샅이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도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예술을 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작업실까지 향하는 복도를 걸어가며 오늘은 또 무슨 일을 하려나 싶다. 무엇인가를 자르고 조물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어른이 될 거라는 생각을 어른이 되기 전에 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가끔 그 복도가 한없이 길게 느껴진다. 그러다가도 어떤 날은 예술은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술이라는 활동 안에서 마음속이 가득 차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이 말을 자주 생각한다. 내가 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시작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 먼 과거를 생각하다보다 보니 예술을 시작했기 때문에 예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것은 꽤나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 내일도 긴 복도를 지나 작업실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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