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지난해 세수결손이 예상되자 한국은행이 금융·통화 정책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쌓아둔 법정 적립금을 사용할 수 있는지 대형 로펌에 자문을 구했던 사실이 밝혀졌다고 경향신문이 29일 인터넷판으로 보도했다. 세수결손이란 정부가 예상한 세금 수입에 비해 실제 세금 수입이 부족하게 된 상황을 말한다.
매체에 따르면 로펌은 기재부가 한국은행 적립금을 세수결손에 활용하려면 "한국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불가 의견을 제시했다. 기재부가 세수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없이 대응하려다 법적 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경향신문은 법무법인 태평양이 지난해 4월 기재부에 제출한 ‘한국은행 적립금의 세입 납부 가능 여부’ 자문 답변서를 공개했다. 이 답변서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것이다.
기재부는 세수결손이 커질 가능성이 보이자 지난해 4월 21일 법무법인 태평양에 한국은행 적립금을 정부 세입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묻는 비공개 자문요청서를 보냈다. 기재부는 공문에서 "최근 경제상황을 고려해 20조 원이 넘는 한국은행 적립금 일부를 정부 세입으로 활용해 국민부담을 낮추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자문 요청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기재부가 발표한 1~2월 기준 나라살림 적자(관리재정수지)는 31조 원에 달했다.
태평양은 지난해 4월 27일 기재부에 ‘불가’ 답변서를 보냈다. 태평양은 “관련법에 따르면 한국은행 적립금은 한국은행의 손실보전에 사용돼야 하며, 정부 세입 납부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법적 근거는 없다”며 “한국은행 적립금을 정부 세입으로 활용하려면 한국은행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적립금은 한국은행이 위기 상황에 대비해 마련해둔 전용 비상금이다. 한국은행법에 따라 한국은행은 매년 순이익의 30%를 적립금으로 쌓아야 하며, 이 적립금은 정부가 필요할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일시 대출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일시 대출금은 정부가 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지만, 적립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의 독립적인 통화 정책 수행에 필수적인 자금인 적립금을 세수결손에 사용하려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한국은행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기초자본이 없기 때문에 적립금이 손실을 보전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적립금이 없다면 독립적인 통화 정책 수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적정한 적립금 규모를 총자산 대비 5%(약 27조 원) 수준으로 보고 있는데,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은행의 적립금은 총자산의 3.8%(약 21조 원)다. 같은 기간 스위스 중앙은행의 총자산 대비 적립금 비율은 7.9%, 홍콩 21.8%, 대만 6.7%였다.
진성준 의원은 경향신문에 “윤석열 정부가 2년 연속으로 세수결손을 예상하고도, 국회가 심의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돌려막기식 대응만 하려 했다”며 “국가재정법 개정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민주당 의원들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인 2021년 한국은행 적립금을 세입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에, 현행법상 가능한지 알아보려는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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