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원 임박, 한은 금리인하할 수 있을까?
원/달러 환율이 1400원 돌파를 앞두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총 6500여 거래일 중에서 환율이 1400원을 넘었던 날은 단 90여일에 불과합니다. 이 점에서 1400원 환율은 심리적 공포를 자극하는 '검은 백조'라 할 수 있습니다. 검은 백조는 빈도는 낮지만, 임팩트는 매우 큽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달러원이 1400원을 넘으면 마치 천장이 뚤린 듯 반응합니다. 환율은 하루에 20~30원씩 급등락하고, 일중 변동성도 크게 증가하면서 시장에 패닉이 찾아오죠. 경제 주체들도 환율 변동이 커지면 사업 및 투자 계획을 보류하고 불안이 커집니다.
환율이 오르면 한국은행은 금리인하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행의 책무 중 하나가 '거시건정성 제고', 즉 환율 안정을 통한 시스템 리스크 관리인데, 금리를 인하하면 환율이 더 급등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국은행이 1400원 위에서도 금리를 인하한 사례도 있습니다. 2008년 11월과, 2009년 1월과 2월이 그 예입니다. 또한 1300원~1400원 구간에서 금리 인하를 사례도 세 번 있습니다. 2001년 7월, 2001년 9월, 그리고 2024년 10월이 그것입니다.
이 여섯 번의 사례에는 두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글로벌 금융 안정이 심각하게 훼손된 시기라는 점. 둘째, 미국이 먼저 금리 인하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중국 지방채 리스크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글로벌 금융은 양호하며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도 불투명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율이 1400원 부근에 머문다면, 한국은행은 저성장과 환율 방어 사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내수도 부진한데, 한국은행은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행은 대체로 연준과 통화정책적 공조관계를 유지해왔지만, 내수가 심각하게 부진할 때는 독립적인 대응을 보이곤 합니다. .2000년 이후 총 6차례의 금리인하 사이클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글로벌 경제와의 공조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사태나 2019년 코로나 팬데믹처럼 극단적인 내수 침체 상황에서는 한국은행이 독자적으로 강력한 부양책을 시행한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의 2024년 3분기 성장률은 전분기비 0.1%에 그쳤습니다. 전년동기대비로는 1.5% 성장에 머물렀어요. 금융시장에서는 전분기비 0.5%, 전년비 2.0%을 전망했는데 예상치를 대폭 하회함에 따라 성장부진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었습니다.
부문별 성장기여도는 더욱 처참합니다. 민간 -0.4%, 정부 0.5%로 내수가 부진하고, 수출도 반도체 업황 전망이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어요.
올해 성장률은 대략 2%대 초반으로 하향 조정될 것이고(컨센서스 2.2~2.3%), 내년 성장률도 2% 하회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우리나라는 잠재성장률(2%)을 하회하는 구간에 진입하게 됩니다.
내수 부진으로 2025년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환율이 연평균 1300원을 훌쩍 넘고, 최근 1400원에 근접하는 등 원화 약세 움직임이 심화됨에 따라 통화정책 인하 속도가 더 느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
환율이 1400원을 넘는 상황과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둔화의 원인은 같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지고, 동력을 상실한 전동차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통화정책은 경제 성장의 마중물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산업 구조 및 경제 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지금 통화정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은 성장 동력을 확보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통화정책의 핵심은 '누구를 살릴 것인가'보다는 '누구를 희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습니다.
첫 번째 희생 대상은 부동산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자금은 은행과 부동산에만 몰리고 있는데, 일부 지역에 국한된 부동산 가격 상승은 내수 활성화나 소비 심리 개선에 기여하지 못합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제약이 필요할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은행 총재는 "10월 금리인하는 실기가 아니다. 만약 7월에 인하했다면 환율은 더 올랐을 것이고, 가계부채는 10조원까지 늘어났을 것"이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4분기 성장률이 매우 낮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통화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고, "연준이 11월에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달러 강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11월 금리결정에 강달러(원화 약세)를 고려할 것이다"고도 언급했어요.
결론적으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속도는 전문가들의 전망보다 느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리 인하는 글로벌 트렌드 및 통화정책 정상화 차원에서 불가피하지만, 시장의 기대보다 더딘 인하로 환율 방어와 부동산 쏠림 현상을 완화하려는 전략이 예상됩니다.
다만, 금리인하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만약 한국은행이 내수 부진을 이유로 갑작스럽거나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 인하를 결정하면, 경기 부양 효과보다는 경기가 매우 안 좋다는 부정적인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유동성 공급이나보다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금리 인하의 영향을 자산효과와 안전자산 쏠림이라는 두 가지 시나리오로 보고, 이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채권 애널리스트 출신인 구혜영 칼럼니스트는 16년간 금융회사에서 영업(동부증권, NH선물),리서치(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운용(미래에셋증권) 직무 경험을 통해 주식, 외환, 채권 관련 실무를 섭렵했다.
대기업 전략기획실 리서치팀장(CJ대한통운)을 거쳐 현재는 1인 기업(영앤그로우, 콘텐츠 창작업)과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프로들의 금리 공부방'을 운영 중이다.
[저서] 주식은 모르겠고 투자는 하고싶어(포레스트북스, 2021년)
구혜영 칼럼니스트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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