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이변 없던 결과, 거대 양당 리더십 타격 피했다
10·16 재·보궐선거에서 여야가 각자의 텃밭을 사수하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모두 리더십에 직접적인 타격을 피하게 됐다. 이번 재보선은 양당이 한동훈, 이재명 대표 체제로 재편된 이후 치러진 첫 선거로, 총선 이후 민심을 가늠할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총력전이 벌어졌다.
각자의 텃밭 사수한 양당
여야 간 격전지로 떠올랐던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일현 금정구청장 후보는 61.03%를 얻어 38.96%를 득표한 민주당 김경지 후보를 22.07%포인트 차로 이겼다. 금정구는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13.25%포인트 차로 앞선 보수세가 강한 지역이다. 2000년 이후 재·보궐 선거를 포함한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차례를 제외하고 보수정당에서 구청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와 당정 지지율 하락 등 여권 악재가 이어지면서 여야 후보가 막판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악조건 속에서도 금정구청장을 총선 당시보다 더 벌어진 격차로 지켜내면서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선 당시 18석 가운데 17석을 몰아줬던 부산 민심이 돌아서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이다. 윤 당선인은 “이번 선거는 정권 심판이 아니라 금정구 미래·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고자 하는 구민들의 열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남은 1년 8개월 동안 금정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정권 심판’을 전면에 내세워 총력전을 펼치며 금정에서 이변을 연출하려 했던 민주당으로선 지난 총선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성적표일 수 있다. 선거 막판 김영배 의원의 ‘실언’이 적지 않은 악재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김 의원은 김재윤 전 부산 금정구청장의 병환 별세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를 두고 “혈세 낭비”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신중한 언행과 정제된 발언을 해야 했음에도 저의 부족함으로 고인과 유가족께 상처를 드렸다”고 사과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야당끼리 치열한 3파전이 펼쳐진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에서는 민주당 장세일 후보가 41.09%를 얻어 진보당 이석하(30.71%), 조국혁신당 장현(26.56%) 후보를 이겼다. 막판까지 야당 후보들끼리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으나 민주당이 상당한 격차로 승리, 이재명 대표가 주도권을 유지하며 향후 재보선과 지방선거에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4파전’으로 치러진 강화군수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박용철 후보가 51%의 득표율로 당선을 확정지었고, 곡성군수 재선거에선 민주당 조상래 후보가 당선됐다. 한편 진보 진영 조희연 전 교육감의 유죄 판결로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선 진보 성향 정근식 후보가 보수 성향 조전혁·윤호상 후보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이번 재보선은 양당이 한동훈·이재명 대표 체제로 재편된 이후 치러진 첫 선거였다. 총선 이후 민심을 가늠할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총력전이 벌어졌는데, 이번 결과를 두고 신율 명지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각자 텃밭을 지켜냄으로써 둘 다 본전을 찾은 선거”라고 촌평했다. 다음 전국 단위 선거는 2026년 6월 지방선거이지만, 여야는 이에 앞서 내년 4월 서울 구로구청장을 포함한 재보선에서 다시 한 번 겨루게 된다.
사령탑 위상 굳혔으나 난국 돌파 필요한 한동훈
한동훈 대표 측은 이번 승리에 고무된 표정이다. ‘친윤계’가 벼르고 있던 ‘선거 패배 시 한동훈 책임론’을 피하며 당내 ‘사령탑’으로의 위상을 굳히게 됐다. 한 대표 측 관계자는 “정권 심판론, 김건희 리스크 등의 태풍을 한 대표 개인기로 막아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들께서 국민의힘과 정부가 변화하고 쇄신할 기회를 주신 것으로 여긴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주신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재보선 결과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한편 한 대표는 선거 후 지난 10월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회동을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를 가졌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정책분야에서 대표적인 당정 간 이견이 있던 의대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방안을 놓고 논의를 가졌던 걸로 전해졌다. 면담 후 한 대표는 코너에 코너에 몰리는 모양새다.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한 3대 요구가 윤 대통령에게 사실상 모두 거절당한 이후, 정면 돌파를 선택하자 곳곳에서 제동이 걸리고 있어서다.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한동훈표’ 김건희 특검법을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대표는 인적 쇄신을 해야 국정동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이로 인해 윤 대통령과 만남이 사실상 ‘빈손’으로 종료되자 김 여사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 대표는 회동 다음 날 대통령실에서 대화 내용을 정리해서 공개한 것을 두고도 “용산은 지금 말을 각색할 때가 아니라 김건희 여사 관련 3대 제안에 대해 ‘예스’냐, ‘노’냐를 말할 때”라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이에 즉각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예스’냐 ‘노’냐라는 부분은 이미 어제 답을 저희가 하나씩 플러스 알파까지 더해서 말씀을 드렸다”며 “그리고 ‘왜곡했다, 각색했다’ 부분은 저희가 사실 회담 결과를 있는 그대로 설명을 했다. 왜곡이 있다고 말씀하시면 저희가 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말씀 좀 더 붙이자면 이 엄중한 정치 상황에서 당정이 하나가 돼서 어려움을 극복해야 될 시기”라고 덧붙였다.
정권 겨냥 행보 탄력 붙는 이재명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 전남 영광에서 승리한 것은 상당한 성과다. 당초 텃밭인 호남 선거는 ‘이겨야 본전’으로 불리지만,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후보들이 선전하며 막판 혼전 양상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실제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인 43.14%까지 치솟을 정도로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총선 압승에 이어 재보선에서 텃밭을 사수하며 이 대표는 ‘선거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재확인했다.
이번 결과를 두고 ‘호남이 이 대표를 인정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지난 4월 총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아닌 조국혁신당에 비례대표 표를 던졌다. 검찰이 이 대표에게 공직선거법 위반(2년)과 위증교사(3년) 사건에 모두 최대 형량을 구형하며 ‘11월 위기설’이 제기된 상황에서 진보 지지층이 이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선거 이후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재추진을 비롯한 윤석열 정권 겨냥 행보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김성회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 재보선 결과에 대해 “(호남 승리는) 제1야당이자 다수당인 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의 국정파탄, 민생파탄에 더욱 강하게 맞서 싸워달라는 요구이자, 소외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서민들이 살길을 열어달라는 외침”이라며 “(인천 강화, 부산 금정이) 당선에 이르지 못한 것은 더욱 겸손한 자세로 한 발 더 민심에 다가서라는 질책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자평했다.
조국혁신당은 ‘지역정치 혁신’과 ‘정권교체를 위한 진보진영 경쟁력 강화’를 기치로 영광 선거 총력전에 나섰지만 결과는 3위에 그쳤다. 조국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현지 월세살이를 하는 등 사활을 걸며 초반엔 돌풍을 일으켰지만 신생 정당으로서의 조직력 한계를 넘지 못했다. 조국 대표는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조 대표는 “혁신당은 지역 정치와 지역 행정의 대안을 제시하며 재·보궐선거에 뛰어들었다”며 “창당 1년도 되지 않은 신생 정당으로 수십 배나 조직이 크고 역사도 오랜 정당과 당당하게 겨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부족했다. 염원을 담지 못했다”며 “부산 금정에서 어렵게 일궈낸 야권 단일 후보도 승리하지 못했다. 특별히 아쉬운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러나 오늘 선거 결과는 혁신당의 종착점이 아니라 새 출발점”이라면서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항해사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을 되새겨 보며 멈추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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