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사업에 관심을 보이던 중 왕회장은 놀랍게도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통일국민당'이라는 정당을 직접 만들어 기존 정당에 위협을 줄 정도였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졌다. 왕회장은 선거 과정에서 그와 앙숙관계가 됐다. 김영삼 후보는 김대중 후보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가 자신의 표를 갉아먹는다는 이유로 출마포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 따라서 왕회장은 김영삼 대통령 정권 5년 간 숨을 죽이며 살아야만 했다.
휸다이그룹의 대북사업도 깊은 겨울잠을 자야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북사업 창구를 정부로 단일화했다. 민간기업들이 추진할 수 없는 국가사업이라는 논리였다. 왕회장은 자서전에서 이 당시의 심정을 밝힌 대목이 있다.
“정치권의 기상은 일기보다도 변화무쌍하다. 정부가 지원하고 통일원이 허가해서 북한에 갈 때 그 화창했던 봄 날 분위기는 한꺼번에 찬바람이 불면서 냉각됐다. 이 때문에 내가 북한에 가서 그 사람들과 열흘에 걸쳐 진지하게 협의해 도출해 가지고 온 대북사업 의정서는 쓸모없게 됐다. 나는 되지도 않을 일을 북한에 가서 바람만 잡고 온 사람이 되어 버렸다.”
전금철의 예언과 100달러 내기
1994년 어느 날.
왕회장이 대선에서 패배해 칩거하던 때다. 왕회장과 마찬가지로 김대중 대통령도 당시엔 같은 처지였다. 그는 정계 은퇴까지 선언하고 영국에 머물렀었다. 그런데 당시 김일영 휸다이백화점 사장은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의 말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기업체 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중국 베이징에 출장가서 북한 사람들을 사업상 접촉했는데, 왕회장과 휸다이그룹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했다.”
이말을 들은 김일영 사장은 왕회장에게 달려갔다.
그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왕회장은 “자네가 직접 베이징에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김일영 사장은 서둘러 출국했다. 북한에서 중국 베이징으로 파견 나온 박종근(장성 출신)이라는 대남사업 대표를 만났다.
북한의 박종근 대표는 김일영 사장에게 “왕회장이 1989년 첫 방북 해 작성한 대북사업 의정서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김일영 사장은 대뜸 “왕회장이 북한을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장을 달라”고 요구했다.
박종근 대표는 “그렇다면 내일 다시 만나 이야기하자”고 했다. 약속 장소를 알아본 김일영 사장은 다소 께름칙했다. 허름한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이 호텔은 북한 측이 마련한 아지트와 같은 곳이다. 김일영 사장은 밤새 고민을 하다가 다음날 마음을 다 잡고 북측이 지정한 호텔로 다시 나갔다. 김일영 사장은 납치당할 것 등을 걱정했다. 주변사람들에게 북한 사람을 만나러 간다고 미리 연락까지 해뒀다. 다행히 박종근 대표는 호텔 밀실이나 객실이 아닌 공개된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미리 연락한뒤 그곳에 나타났다.
[다큐소설 왕자의난2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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