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27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일본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 여당이 15년 만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취임 한달을 맞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리더십이 타격을 입게 됐다.
당장 이시바 총리는 한달 뒤 총리 지명 찬반 선거에서 과반 득표가 어려워졌다. 최악의 경우에는 총리가 교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자민당 내에서 이시바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질 수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다른 야당과의 연정을 통해 정권교체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일본의 내치 문제로 한미일 3국 협력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
비자금 스캔들·고물가에 정권 심판론 거세.. 입헌민주당 노다 부활
자민당 247석 → 191석.. 공명당 대표도 낙선
28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우리나라의 총선격인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191석을 차지하며 단독 과반에 실패했다.
특히, 공명당도 24석을 차지하는데 그치며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 여당 의석수도 215석으로 중의원(465석) 과반인 233석에 미치지 못했다. 두 정당은 선거 시작 전 의석수가 각각 247석, 32석 등 총 279석이었다.
자민당·공명당 연립 여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놓친 것은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연말 불거진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파문과 고물가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민심이 여당에 심판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정권 심판론으로 이시이 게이이치 공명당 대표와 마키하라 히데키 법무상, 오자토 야스히로 농림수산상 등 현직 각료 2명도 낙선했다. 공명당 대표가 낙선한 것은 24년 만이며, 현직 각료의 낙선은 8년 만이다.
반면, 이번 선거에서 '정치 개혁'을 외치며 자민당 비자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기존 98석에서 148석으로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이밖에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는 44석에서 38석으로 감소했고, 국민민주당은 7석에서 28석으로 증가했다.
제1야당이 된 정당이 전체 의석수의 30%에 해당하는 140석 이상을 확보한 것은 2003년 민주당이 177석을 얻은 이후 21년 만이다.
특히 입헌민주당이 보수화 전략으로 중도 성향 유권자를 끌어온 것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입헌민주당 노다 대표는 3년 전엔 지역구마다 일본공산당과 후보 단일화를 했다가 강경 좌파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의 외면에 참패했지만 이번엔 선거 협력을 하지 않은 것이 중도층 공략에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현 이시바 총리 책임론 불가피.. 퇴진 요구 거셀 듯
이시바 "직책 다할 것".. 중도퇴임 사실상 거부
이번 선거로 인해 자민당, 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등 '헌법 개정 세력' 전체 의석수는 개헌안 발의 가능 의석인 310석(전체 3분의 2)에 모자라는 297석이어서 향후 자민당이 추진하는 개헌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지난 1일 취임한 이시바 총리의 리더십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이시바 총리는 조기 총선을 치르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선거 패배로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등 정책 추진 동력도 떨어지게 됐고, 자민당 내에서는 이시바 총리 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결선을 치른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과 다카이치를 밀었던 아소 다로 자민당 최고고문이 이시바 퇴진을 주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시바 총리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생활과 일본을 지키는 일로 직책을 완수해 나갈 것"이라며 중도 퇴임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며 "당의 개혁 자세에 대한 국민의 질책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은 한시라도 멈출 수 없다"며 "국정을 확실하게 추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정치자금 문제를 비롯하여 경제 대책, 개헌, 안보, 추가경정 예산 편성 등 여러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 연정 통한 정권교체 시도 가능성
일본 정치권에서는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다른 야당들과 연정을 통해 정권교체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총선 후 1개월 이내에 소집되는 특별국회에서 총리 지명과 상임위원회 구성 등을 새로 하게 되는데 그전까지 야당간의 합종연횡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특별국회에서 이시바 총리가 과반 찬성표를 받지 못한다면 결선투표까지 해야할 수 있으며 만약의 경우에는 총리가 바뀔 수도 있다.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성의 있는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며 "특별국회에 어떻게 임할지부터 논의를 시작해 그 뒤에는 당연히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전도 전망하면서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며 연정 의지를 내비쳤다.
현지 언론은 자민당이 일단 제1당 지위는 유지한 만큼 무소속 의원 영입, 일부 야당과 연계를 통해 연립 정부를 확대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연정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유신회의 바바 노부유키 대표와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는 각각 NHK와 MBS 라디오에서 자민·공명과의 연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日, 한일관계 대담한 결단·변화 추진 어려워질 듯
이번 선거로 인해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에서 대담한 결단을 내리거나 변화를 추진하기 어려워지게 됐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28일 연합뉴스에 "자민당이 승리했다면 이시바 총리가 외교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었겠지만, 소수 여당 체제에서는 새로운 변수를 안게 되는 사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한일관계에서 당장 새로운 변화를 추진할 힘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교적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시바 총리가 당내 강경 보수파의 반발 등을 고려해 한일 역사 문제에서도 소신 발언을 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오쿠조노 교수는 한일관계 개선 기조는 여야를 막론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도 정국 전망이 불투명해 일본 정치권이 외교에 힘을 쏟기보다는 연립 정권 확대나 정당 간 합종연횡 등 국내 사안에 집중하려 할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그는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맞춰 한국이 일본 측에 대담한 결단을 원한다면 일본이 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여당인 자민당도 야당인 입헌민주당도 지금의 한일관계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정책을 크게 바꾸지 않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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