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火烧不尽,春风吹又生.
들불로도 다 태우지 못하고 봄바람 불어오면 다시 자라나네.
<풍류일대>를 함께 지나온 지아장커 감독과 자오타오 배우의 시간과 영화.
2001년 <공공장소>부터 2021년 <강호아녀>까지. 20여 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지아장커 감독은 다른 영화 한 편을 꾸준히 만들고 있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열정과 격정이 넘치는 시기에서 안정과 고요의 시간을 지나 2020년대 초 팬데믹 시기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담아둔 중국 사회의 풍경 안에 ‘차오차오’와 ‘빈’이라는 두 사람의 이별과 재회, 또 한 번의 이별 이야기를 더했다. 그렇게 20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기록해둔 파편화된 조각들이 모여 영화 <풍류일대>가 되었다. 긴 세월의 조각들을 편집하며 감독은 어떤 소회를 품었을까? 오랜 시간 그의 영화 안과 밖에서 배우로, 삶의 반려자로 동행해온 자오타오 배우에게 <풍류일대>는 어떤 의미였을까? 한 편의 영화로 함축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넓고 깊은 이야기에서 건져 올린 질문의 조각을 모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지아장커 감독과 자오타오 배우에게 전했다.
<풍류일대>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이후에도 영화를 놓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큰 파장이 인 작품이다.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영화를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나?
지아장커 보는 내내 감개무량했다. 이 영화의 촬영을 시작했을 때 서른한 살이었는데, 지금
쉰이 훌쩍 넘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도 배우들도 많은 변화를 겪었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오타오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처음 <풍류일대>를 봤는데, 그날의 동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랜 시간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인물이 한 편의 영화에 담긴 모습을 보면서, 감독은 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구나 싶었고 큰 감명을 받았다.
처음부터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고 시작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만드는 과정이 더 궁금하다.
자오타오어떤 이야기다, 언제까지 이어지는 촬영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나눈 적이 없다. 지아장커 감독의 스타일이 그렇다. 카메라 하나 들고 발길 닿는 대로 가면서 여기저기를 찍는 편이다. 이를테면 예전에 다퉁이라는 도시에서 어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그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1950~1960년대에 지은 큰 강당 같은 곳의 분위기를 좋아하게 됐다. 그 이유로 그곳을 지나 다니고, 멍하니 있기도 하면서 현상적인 신들을 찍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영화의 장면 장면을 수집해간 것에 가깝다.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해 가장 뒤늦게 알게 된 사람이 내가 아닐까 싶다.(웃음)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것이 그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지아장커 2000년대 초에 디지털 촬영 기법이 등장하면서 촬영에서 제약이 많이 없어졌고, 그래서 여기저기 목적 없이 다니면서 여러 생활상을 찍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수많은 촬영본이 쌓였고, 팬데믹을 계기로 이제 우리가 찍어온 것을 정리해 세상에 내놓아보자 생각했고, 그게 <풍류일대>가 되었다.
20년간 이어진 촬영이니, 촬영본이 여타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많았을 것 같다. 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며 가장 집중한 부분은 무엇이었나.
지아장커 그래서 편집 과정이 무척 바쁘고 번잡했다. 중점으로 둔 건 주인공의 감정이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상도 다양하게 변모하니 중심이 되는 한 가지가 필요했는데 그게 인물의 감정이었다.
그 감정을 보여주며 대사를 배제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래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차오차오는 오롯이 눈으로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지아장커 원래는 말이 아예 없진 않았다. 대사가 있었는데 편집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 너무나 제한적인 표현 방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그 오랜 시간 겪은 복잡다단한 삶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하는 건 오히려 제약이 아닌가. 또 말이 많을수록 제대로 표현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오차오의 대사를 나중에 다 덜어내게 되었다. 말보다는 차오차오의 눈으로, 주변의 소리로 관객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내려 했다. 주변 환경에서 발생하는 소음이나 소리가 시대가 바뀌면서 변하지 않나. 대사를 빼고 그 소리들만 남겨둠으로써 주인공이 머무는 시간을 관객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다.
영화를 찍는 과정도 비슷했나? 디렉팅을 주고받는 과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지아장커 나도 배우들도 별로 말이 없다. 특별히 구체적인 디렉팅을 하기보다는 아주 간결한 대화만 나눈 후 그냥 조용히 찍는 편이었다. 후반부에 차오차오가 마트에 있는 AI 로봇과 만나는 장면을 예로 들면 사전에 이야기를 나눈 부분은 이런 식이다. 이 로봇과 그날 처음 만난 건지, 아니면 늘 함께했던 것인지, 로봇이 차오차오에게 친구 역할을 해주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의미를 가진 존재인지에 대한 의견만 나누고 다른 디렉션은 없었다.
자오타오 그 대화를 통해 얻은 생각에 나의 해석을 더해 인물을 표현해냈다. 마트에서 일하는 2022년의 차오차오에 대해선 영문 제목의 ‘tide’라는 단어를 떠올렸다.(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Caught by the Tides’다.) 그 말처럼 차오차오도 어딘가에 묶여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첫째는 마트의 수많은 손님들과 그 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에, 둘째로는 코로나19라는 역병에 묶여 있는 거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고, 그래서 마지막에 달리기를 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마지막 장면이 참 좋았다. 차오차오의 삶이 그럼에도 계속 이어질 거란 희망이 보였다는 점에서.
자오타오 그 장면도 역시 대사가 없었다. 그런데 연기하면서 순간적으로 ‘하’ 하고 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런 행위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해방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이 나의 즉흥연기 중 하나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짧은 글이 있다. ‘野火烧不尽, 春风吹又生.(들불로도 다 태우지 못하고 봄바람 불어오면 다시 자라나네.)’ 제목과 함께 등장하는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만남과 이별,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빈과 차오차오에 대한 말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지아장커 그 문장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부득고원초송별’의 한 구절이다. 이는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생명력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들풀이라는 것이 말라비틀어지거나 불에 타도 이듬해가 되면 그 자리에 다시 돋아나지 않나.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힘든 일을 겪고 무너지고 좌절해도 다시 일어서서 생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 속 두 인물도 마찬가지로 둘 다 많은 일을 겪고 힘겨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를 말하고 싶어서 인용한 문장이다.
두 인물이 계속 살아가게 되는, 생명력을 얻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아장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순간적인 게 아니라 과정이지 않나. 삶에서 죽음까지. 그 과정 자체가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듯이.
러닝타임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싶다. 무려 20년의 세월을 함축한 이야기이니, 더 길어도 되겠다 싶은데 전체 분량이 120분이 되지 않는다.
지아장커 나는 지금도 길다고 생각한다.(웃음)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억하진 않는다. 잠깐잠깐의 순간을 기억할 뿐이지. 그래서 3분으로 만들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3분짜리 영화는 출품할 수 없기 때문에 111분으로 길게 찍었다.
영화 <플랫폼>(2000)부터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엔 자오타오 배우가 꾸준히 등장한다. 흔히 페르소나라는 표현을 쓰는데, 감독에게 자오타오 배우는 어떤 존재인지 묻고 싶다. 반대로 배우에게 지아장커라는 감독은 어떤 감독인가?
지아장커 여신이다, 페르소나다. 이런 표현은 잘못된 것 같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예술가고, 내가 써낸 인물을 충분히 연기할 수 있는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자오타오 영화를 시작하기 전의 나는 나와 가족을 제외하곤 타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아장커 감독과 처음으로 영화란 걸 만들면서 바뀌었다. 그의 영화에는 화려하고 거대한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늘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를 통해 그렇게 나와는 무관할 것 같은 인물과 나의 관계에 대해, 타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풍류일대>도 그렇지 않나. 차오차오가 지나는 거리에 행인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들은 주인공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 같지만, 사실은 한 우주 안에 함께 존재하며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내게 타인의 정서를 감각하고 사랑의 마음을 품게 해준 감독이다.
그럼 영화는 어떤 존재인가? 긴 시간 영화 안에 머물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자오타오 첫 영화 <플랫폼>을 촬영하고 난 이후에 느낀 것이 있다. 지아장커 감독을 포함해 스무 살이 갓 넘은 수많은 청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하기 위 해 노력하고 애쓰는, 그 열정과 사랑이 내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동력은 내가 연기한 수많은 여성들에게서 얻었다. 연기하면서 다른 여성들이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이해하게 됐는데, 그게 결국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지아장커 사실 영화를 그만 찍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만약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영화를 안 찍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는 만드는 것보다 보는 게 더 좋다.
관객으로서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지아장커 1980년대 홍콩의 코미디영화를 좋아한다. 주성치가 나오는. 그런 영화를 찍고 싶기도 했는데, 나의 작업 방식으로는 안 되더라.
자오타오 나는 좋아하는 영화가 아주 많다.(웃음) 스릴러도 사랑하고, 옛날 무술영화도 좋아한다. 얼마 전에 핑야오 국제영화제에서 브라질 감독 월터 살레스(Walter Salles)의 <아임 스틸 히어(I’m Still Here)>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작품의 여성 캐릭터가 좋아서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특정한 장르를 좋아한다기보다 나를 감동시키는 캐릭터가 있으면, 어떤 이야기에든 빠져드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감독이 꾸준히 영화 안에서 주목하는 키워드인 시간, 시절, 시대에 대한 질문을 하고자 한다. 영화를 하기에 좋은 시대, 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나?
지아장커 특정한 시대라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영화를 처음 찍을 때가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호기심으로 충만한 채로, 익숙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시도하고 해내면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계에 30년 넘게 머물면서 모든 것이 익숙해진 나에게 지금은 좋은 시기가 아니라 생각한다. 한편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보면 영화가 곧 사라질 것만 같다. 어쩌면 우리가 영화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관객이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고, 그런 영화도 점점 적어지는 것 같다. 좀 슬픈 시기라 해야 할까.
그래서 <풍류일대>와 같은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가 계속해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아장커 글쎄.(웃음)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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