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은 어쩌다 프로야구에 빠졌을까? 새롭게 유입된 팬들이 어떤 팬덤에서 옮겨왔는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아이돌이다. 포토 카드, 홈마, 직접 만든 굿즈 나눔 등 팬 활동의 동향이 소위 ‘돌판’과 비슷해졌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2023-2024 시즌, 좋은 활약을 보인 선수들을 나열하면 이렇다. 이정후, 김도영, 구자욱, 윤동희, 문동주, 이재현, 김택연. 젊고 잘생긴 데다 본업까지 잘하는 야구 선수들이 여성 팬들의 이목을 끌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아이돌과 달리 이들은 서울과 수도권 위주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야구는 10개 구단이 지역을 연고로 전국에 포진돼 있기 때문에 지방 팬들도 소외받지 않고 원할 때 직관을 즐길 수 있다. 구단 유튜브가 활성화됨에 따라 요즘 야구 선수들은 팬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팬 서비스에도 열심이다. 게다가 야구는 페넌트 레이스 특성상 한 해에 많은 경기를 소화한다. 그렇기에 팬이 원하면 언제든 보러 갈 수 있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즐길 수 있으며, 도파민까지 책임진다. 다소 피로도 높은 아이돌 덕질에서 야구로 ‘환승’할 이유는 어쩌면 충분하다. 각 구단의 유튜브와 더불어 〈찐팬구역〉 〈최강야구〉 〈야구대표자:덕후들의 리그〉(이하 〈야구대표자〉) 등 야구 예능이 흥행한 이유도 있다. 특히 〈야구대표자〉는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 ootb 스튜디오의 신작으로, 야구에 대해 무지한 예능인 엄지윤이 10개 구단의 홈구장을 방문하는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다. 야구 관람을 하고 야구 룰, 팬 문화, 응원법 등에 대해 배우며 각 구단만의 고유한 매력에 스며드는 모습은 야구에 입문하는 여성 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여성이 새롭게 주도하는 응원 문화 역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스케치북 응원은 중계에 재미를 주고, 절묘한 상황도 많이 만들어내(예를 들면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라고 쓰인 스케치북을 들고 있던 여성에게 이정후가 진짜로 홈런을 날린 장면) 화제가 되기도. 스케치북 응원을 하는 여성 팬은 중계 화면에 많이 잡히곤 하는데, 이를 두고 일부 남성 팬들은 커뮤니티와 실시간 톡에서 ‘얼평’과 성희롱 발언에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도 한다. 심지어 “여자라면 OOO(선수 이름)”이라는 스케치북을 들고 있던 여성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자 “저는 여자라면이 먹고 싶은데요”라고 발언한 캐스터가 성희롱으로 자격 정지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급증한 여성 야구 팬은 무시와 환대 그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또 다른 예로 지난 9월 단국대학교 스포츠과학대의 교수는 〈조선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야구장을 찾는 2030 여성의 상당수는 야구 팬이 아니라 게스트에 불과하다. 야구 규칙도 잘 모르고 경기를 유심히 보지도 않으며, 화제가 되는 장소에 자신이 있다는 걸 소셜 미디어에 올리려는 경향이 크다”며 여성 팬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KBO의 흥행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프로야구가 인기 있는 국가인 미국과 일본도 점점 높아지는 관중의 연령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야구를 지루하게 여기는 젊은 팬의 유입을 기대하며 경기 규정을 새로 썼다. 베이스 크기를 키우고, 수비 시프트를 제한해 타자의 진루를 유리하게 만들고, 피치 클록(투구 시간 및 타자 준비 시간 제한 규정)을 도입해 경기 시간을 단축하는 등 수백 년간 유지해오던 야구의 룰을 바꾼 것. 그만큼 젊은 세대의 유입은 스포츠계가 풀어야 하는 과제다. KBO의 과제는 조금 다르다. 야구가 중장년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저물고, 여성 관중과 소비자의 힘이 커지고 있다. 업계 및 미디어, 기존 관중의 입장에서도 중계에 잡힌 여성 팬의 얼굴이나 몸매를 평가하거나 그들의 ‘팬심’을 평가절하할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존재로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또한 구단이 여성 관중 성향에 맞춘 마케팅과 홍보에 적극적인 것도 좋지만, 높아진 인기에 걸맞은 경기력과 국제 대회에서 성적으로 보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선수 역시 높아진 사랑과 관심에 자만할 것이 아니라, 프로 선수로서 책임감을 돌아봐야 할 때. 더 이상 응원하던 선수의 소식을 뉴스 사회면에서 보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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