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정치 드라마가 뒤흔든 일본의 조기 총선

혼돈과 정치 드라마가 뒤흔든 일본의 조기 총선

BBC News 코리아 2024-10-28 10:57:03 신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7일 자민당 본부에 모인 기자단 앞에서 발언했다
EPA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7일 자민당 본부에 모인 기자단 앞에서 발언했다

일본의 선거는 보통 시작부터 끝까지 지루하다.

하지만 이번 조기 총선은 달랐다.

작년에 밝혀진 정치자금 비리 스캔들로 인해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중진 의원과 각료들이 연루돼 당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국민들의 분노가 극적으로 표출된 결과다.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그 분노를 표출하며 투표를 통해 자민당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자민당은 1955년 이후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집권당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가장 정확한 추정치에 따르면,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중의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연립 여당 공명당의 의석과 합쳐도 과반에 못 미친다. 공명당이 대표를 비롯해 여러 의원의 의석을 잃었기 때문에 연정에도 불구하고 과반에 필요한 233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정치적 도박을 했지만 역효과를 냈다.

이시바 총리와 자민당은 국민들의 분노를 과소평가했고, 더 결정적으로 국민들의 행동력을 과소평가했다.

이 안일함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었다. 일본 가계가 인플레이션, 고물가, 임금 정체, 경기 침체로 신음하는 가운데 여당 의원 수십 명이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방대한 비자금을 챙겼다는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자민당이 집권당 자리를 유지하려면 선거에서 싸웠던 다른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다만, 상당한 약점을 노출한 상태로 임하게 될 것이다. 즉, 생존을 위해 협상에 나서고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난 9월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 국기를 향해 예를 표하고 있다
AFP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지난 9월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 국기를 향해 예를 표하고 있다

이는 정말 보기 드문 상황이다. 자민당은 일본 정치에서 항상 안정적으로 강자의 지위를 누렸다.

여당으로서 자민당의 과거는 화려하다. 1993년과 2009년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에도 그 기간은 각각 3년뿐이었고, 마무리도 나빴다.

2012년 자민당이 다시 집권한 이후, 자민당은 경쟁이랄 것도 없이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오랫동안 현 상황에 대한 체념이 있었고, 야당은 좀처럼 대중을 설득하지 못했다.

유권자 후지사키 미유키(66) 씨는 선거 며칠 전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일본인)는 매우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도전과 변화가 매우 어렵다. 여당이 한 번 바뀌고 야당이 집권해도 결국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이 유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후지사키는 이번에는 누구에게 투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특히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지금까지 항상 자민당에 투표해왔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도 똑같이 투표할 예정이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일본 정치의 현주소에 대해 더 큰 그림을 보여준다. 수십 년 동안 집권해온 여당, 그리고 국민이 필요로 할 때 단결하지 못하고 대안이 되지 못한 야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과반 의석을 놓쳤다. 하지만 뚜렸한 승리자는 없다.

일본 여당은 투표를 통해 타격을 입었지만, 완전히 퇴출될 만큼 큰 패배는 아니었다.

간다 국제대학의 제프리 홀 강사는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 하지만 “유권자들의 마음 속에는 (믿고 정권을 맡길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BBC에 말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야당을 지지했다기보다는 자민당에 대한 분노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한다.

제프리 홀은 “이번 선거는 부패하고 더러운 정당과 정치인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가 핵심이다.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것은 핵심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 결과로 일본에 남은 것은 힘을 잃은 여당과 분열된 야당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정치적 안정의 표상으로 여겨져 왔다. 불안정성이 고조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투자자의 안전한 피난처이자 신뢰할 수 있는 외교 파트너로 여겨져 왔다.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인접국과 동맹국도 일본의 정치적 혼란을 우려한다.

자민당이 집권하더라도 연정 확대를 위한 각종 양보로 인해 손발이 묶여 약화된 상태일 것이다.

경제를 회복하고, 일관된 임금 및 복지 정책을 만들고, 전반적인 정치 안정을 유지하는 일은 녹록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정치에 지친 대중의 신뢰와 존중을 되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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