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큐멘터리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가을의 전설’이 쓰이는 10월에 말입니다. 2004년 기적의 포스트시즌 스토리를 써 내려간 보스턴 레드삭스 야구팀과 당시 단장 테오 엡스타인. 넷플릭스가 미국의 월드시리즈와 한국의 한국시리즈 등 가을야구의 정점에 맞춰 내놓은 야구 시리즈입니다. ‘더 컴백 (The Comeback, 한국어 제목으로 대역전).’ 오늘 칼럼은 그 감상문입니다.
레드삭스와 보스턴 팬을 80여 년간 고통받게 한 ‘밤비노의 저주’의 질긴 인연과 이를 끊어낸 2004년 팀의 주역들이 3부작 시리즈에 등장합니다. 빈볼을 던지며 동료를 보호하는 페드로 마르티네스, 상대와 몸싸움을 벌이며 분위기를 다잡는 제이슨 베리텍을 비롯해 데이비드 오티스, 핏물로 번진 빨간 양말의 커트 실링 등 그 시절 레드삭스의 주인공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과거를 해석해 줍니다.
케빈 밀라의 코미디언 같은 익살과 함께 팀워크를 아교처럼 이어 붙인 그의 역할도 재조명됩니다. 개성 강한 멤버들을 조화롭게 이끈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인간적인 면과 고민도 잘 드러납니다. 김병현의 모습도 숨은그림 찾기처럼 슬쩍슬쩍 비칩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너클볼러 팀 웨이크필드의 여러 장면은 가슴 뭉클합니다.
20년 전 스토리이지만 왜 여전히 회자되며 팀워크의 교본 같은 히스토리가 됐는지를 보여줍니다. 야구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를 구하는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조직력, 결단, 회복력, 분열과 조화 등 조직과 구성원의 역동성이 이 작품에 잘 정리돼 있습니다. 특히 팀을 운영한 경험과 연결되어서인지 당시 레드삭스 단장 테오 엡스타인의 입장이 와닿았습니다. 트레이드의 후폭풍이 두렵기도 했다는 고백, 양키스와의 라이벌전에서 벤치 클리어링이 나오자 억눌렸던 팀의 폭발력을 발견하며 쾌재를 부르는 모습에서 왠지 감정이입이 됐습니다.
통계를 바탕으로 냉철하게 판단해 저주를 끊고, 올드 스쿨 야구를 대체하기 위해 발탁된 그였지만 또한 감정의 인간이었습니다. 숫자의 구조와 프레임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마음의 에너지 역시 믿어야 한다는 건 선택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라고 다시 한번 느낍니다. 동전 던지기처럼 야구의 여러 통계가 독립된 이벤트라고 아무리 설명해 봐야 팀 스포츠에서 누군가 (또는 상당수 구성원이) 기세 같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객관적인 통계만으론 마음을 사로잡긴 어렵습니다. 누군가는 헌신하고 희생하고 엉뚱하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개성적인 다양한 존재감이 필요하다는 걸 ‘더 컴백’은 보여줍니다.
1920년 베이브 루스를 트레이드한 뒤 붙은 불운을 풀려고 2004년 레드삭스 선수들은 스스로를 ‘멍청이 야구(goofball)’이라고 부르며 별짓을 다 합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양키스 원정을 앞두고 라커룸에서 위스키를 나눠 마시는 장면에선 경악하게 됩니다.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팀워크로 해묵은 저주와 불안을 잠재웁니다. 0승 3패로 궁지에 몰린 시리즈를 뒤집습니다. 엡스타인의 마지막 설명이 그래서 인상적입니다. “그렇게 끈끈한 팀을 만나면 구단 전체가 그 분위기를 따라가죠. 팬과 선수의 경계가 흐려지고 모두가 하나가 됩니다.” 감동적인 고백입니다.
끈끈하다고 번역된 엡스타인의 영어 표현은 무엇이었을까요. ‘연결된(connected)’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두 차례 야구의 오랜 저주를 푼 엡스타인의 비밀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2016년 시카고 컵스로 옮겨가 100년 넘은 ‘염소의 저주’도 풀고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합니다.
당시 컵스의 우승 스토리를 담은 ‘컵스 웨이(The Cubs Way)’라는 책을 보면 엡스타인은 관계(relations)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합니다. 숫자와 통계라는 분석으로 무장한 아이비리그 출신이지만 팀이 어려울 때, 구성원이 힘들 때 현장에서 감정을 연결시키고 교감하는데 눈 감지 않았습니다. 관계와 팀워크에 건강하게 만드는 개성 있는 선수와 감독을 레드삭스에서도, 컵스에서도 모으고 기둥으로 세웠습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어느 팀은 이번에 우승을 하고 어느 팀은 후일을 기약할 겁니다. 뭉쳐있다면, 서로 ‘연결’돼 있다면 기회는 다시 올 겁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 지메일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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