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고민하던 시절, 맛이 좀 이상한 기름이 흡사 만병통치약처럼 광고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기름 중 하나가 실제로 비타민을 다량 함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간유’라는 말을 들으면, 희미한 갈색 액체가 떠오른다. 학교 보건 교사나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교장이 아픈 학생을 위해 숟가락 가득 따라주는 탁한 빛깔의 액체가 연상되는 것이다.
18~19세기에 유행했던 여러 가지 치료법은 시간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더 이상 우는 아기에게 아편제를 투여하지 않는다. 무화과 시럽과 피마자유는 변비에는 다소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약국에서 유황과 당밀을 구입하던 관행이 언제 사라졌는지도 까마득하다.
가짜 약과 특허 의약품이 혼재되었던 시대에 나왔던 치료법 중 간유는 실제로 건강 관련 효능이 있는 흔치 않은 사례다. 간유는 대구의 간을 가열해서 나오는 기름을 채취해 만드는데, 비타민D와 비타민A가 풍부하다. 학계에서 비타민이라는 영양소를 발견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간유를 먹은 어린아이는 소아 뼈 질환이자 발작 및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구루병에 걸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간유의 놀라운 효능은 1919년 칼슘 결핍과 비타민 D 결핍이 구루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정부는 5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간유를 무료로 나눠줬다. “오렌지 주스와 간유를 잊지 마세요!”라는 포스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른 특성이 어떻든, 사실 간유를 삼키는 게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다른 기름과 마찬가지로 산소와 접촉하면 산패되어 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덜 불쾌한 방식으로 비타민D를 얻는 대안(햇볕을 쬐며 피부 표면 아래 효소가 비타민D를 생성하게 하는 것)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국 어린이들에게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2070년까지 1990년 대비 겨울비가 30% 더 늘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측을 보면, 상황은 앞으로 더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그래서 수십 년 전의 여러 국가 정부는 비타민 D를 강화한 식품으로 눈을 돌렸다. 영국 역시 1940년부터 마가린에 비타민D를 의무적으로 강화하게 했다. 그리고 빵과 우유, 시리얼 제조업체들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미국은 1933년부터 분유에 들어가는 비타민D를 강화하는 법을 시행했다. 21세기에도 식품 내 비타민D 함량을 정책적으로 높인 국가들이 있다. 2003년에 식품 제조업체들의 전폭적인 참여로 자체적인 자발적 강화 계획을 도입한 핀란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식품 내 비타민D를 강화하려는 계획이 시행 초기부터 장애물을 만났다. 혈액 내 과도한 칼슘이 신장 결석 및 여러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고칼슘혈증’이라는 질병이 발견된 것이다. 당시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비타민D를 과다 복용하고 있다고 추정했고, 이에 따라 1950년대 영국 정부는 마가린과 유아용 조제분유 외에는 비타민D 강화제 사용을 금지했다.
그렇다고 간유의 시대가 바로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영국은 2013년부터 보충제 섭취를 장려한다는 명목(이 제안에 귀를 기울이거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으로 마가린에 비타민D 강화를 중단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비타민D 수치에 대한 검사 방법이 발전하면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일조량이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는 1~3월에는 영국 어린이의 상당수(일부 연령대의 경우 거의 40%)가 비타민D 결핍을 보인다. 성인의 약 30%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상황은 특히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일수록 더 심각했다.
영국 영양 과학 아카데미 소속 공중 보건 영양학자인 주디스 버트리스는 영양학회지 사설에서 “영국 내 남아시아계 주민들 내 비타민 D 부족은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섰다.
구루병 역시 돌아왔다. 영국에서 구루병 입원 사례는 60~70년대에 하락세를 보인 이후, 수십 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1991년 통계만 봐도 영국의 15세 미만 인구 10만 명당 구루병은 0.34건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구루병 발병률이 상승하기 시작했고 급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2011년에는 “영국의 구루병 입원율이 5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학계의 보고가 나왔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비타민D를 강화한 식품이 필요해진 것일까? 영국의 영양 과학 자문 위원회는 이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 비타민D 강화식품을 먹은 후 발생했던 고칼슘혈증 사례는 비타민 흡수를 방해하는 유전 질환 때문에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강화식품을 많이 먹는 것이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물론 영국의 구루병 증가세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는 사람들이 간유 한 숟가락을 챙겨 먹는 시대가 다시 도래할 수도 있다는 전망 역시 내재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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