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4일 소장 권한대행으로 문형배(58·사법연수원 18기) 재판관을 선출했다. 이종석 전 소장 등 재판관 3명 퇴임으로 그 자리엥서 맴돌던 '헌재 6인 체제'가 본격 '비상 운영체제'로 돌입했다.
이미 헌재는 국회의 후임 재판관 추천 지연에 따라 지난 14일 '심리정족수 7명' 규정 효력을 일시 정지시켜 헌재 마비 사태는 일단 피했지만 재판관 공백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3명 중 2명을 추천하려 하자 국민의힘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헌재 재판관 6명은 이날 오후 3시 재판관회의에서 소장 권한대행으로 선출한 문 재판관은 경남 하동 출신으로 대아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92년 부산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문 소장 권한대행은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창원지법 진주지원장, 부산지법 부장판사, 부산가정법원장, 부산고법 수석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문 권한대행은 2019년 4월 19일 문재인 정부 시절 이미선 재판관과 함께 임명됐고, 임명 날짜와 나이를 고려했을 때 최선임자다. 새 소장이 임명될 때까지 헌재를 이끌게 된다.
헌재 규칙에 따르면 소장이 일시적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최선임이 권한을 대행한다. 소장 자리가 비어 있는 궐위 상태가 되거나 소장이 1개월 이상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재판관회의를 열고 권한대행을 선출한다. 헌재 내부에선 이번 소장 공백 사태가 한 달 이상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각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되는 3개의 지정재판부가 헌법소원 심판 사전심사를 맡는다. 이 전 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전 재판관이 지난 17일 퇴임해 각 재판부에는 재판관이 2명씩 남았다. 헌재는 3개 재판부는 유지하되 빈자리는 다른 재판부 재판관이 임시 대직해 채우기로 결정했다. 본인 재판부 업무에 대직까지 더해져 업무량이 더 늘어났다.
문 재판관은 이 전 소장 퇴임 다음날인 18일부터 임시 대행을 맡아왔다. 그는 헌재 연구관들에게 새 재판관이 임명되면 신속히 선고를 진행할 수 있도록 사건 연구에 속도를 내라고 당부했다.
헌재는 예방 차원으로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한다'는 헌재법 23조 1항의 효력정지 신청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지만, 실제로는 6인 체제로 중요 사건에 대한 결정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헌재법에 따라 위헌이나 탄핵 결정의 경우 재판관 6명 찬성이 필요하다. 만약 남은 재판관 6명 중 5명은 위헌 의견을 냈는데, 1명이 합헌 의견을 내 결과적으로 합헌 결정이 나올 경우 9명 전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쟁점이 첨예한 사건일수록 신뢰성에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예상이다.
법조계는 "6인 체제에서 재판관 1~2명의 반대로 기각되거나 합헌 결정이 났을 때 국민들은 결정의 정당성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헌재 내부에선 쟁점이 첨예한 사건 선고는 미루고, 6명 의견이 일치되는 사건만 먼저 처리할 경우 재판 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이종석 전 소장은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헌재 상황이 위기 상황이라고 느끼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권한쟁의심판, 탄핵심판과 같은 유형의 심판사건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결국 헌재 결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헌재의 권위가 추락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여야 정치권이 정치적 합의를 시도하기 보다는 권한쟁의·탄핵 심판 사건을 제기하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이영진 재판관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 격언과 함께 우리 재판소에 대해 신속한 사건처리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오고 있다"며 "후임 재판관이 선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사건의 심리와 처리는 더욱 정체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무분별하게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데 대한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6년 동안 여러 사건을 접하면서, 사건들 그리고 선례와의 사이에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점을 잘 드러내고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담은 의견을 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헌재 재판관 9명은 대법원장·대통령·국회가 각각 3명씩 추천한다. 이런 헌법 취지를 살려 균형있는 심리·결정을 하려면 하루빨리 후임 인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참여자치시민연대는 "재판관 공백 사태를 만든 국회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고, 3·3·3 구조를 유지해 헌재 결정의 정당성을 담보하고자 했던 취지가 훼손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국회는 재판관 추천 절차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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