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8일 방송된 무릎팍 도사 문성근편
2012년 나는 꼼수다 봉주 19회 장준하 의문사 편
한국 현대사 그 중앙을 가로 지른 세친구 이야기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이분들에 관해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이야기해 보려고 함
짧은 생애를 강렬하게 살다 가신
윤동주시인
친구인 윤동주 그의 삶을 기리며 또 각자 나라를 위한 삶을 맹렬히 사셨던
문익환목사님 장준하 선생님 이야기를 하려고 함
문익환 목사님은 말했듯
일본을 위해서 죽을 수 없다 !!!
해서 학교 교장을 찾아가 단판을 짓고
징집을 피해 전학을 감
문익환 목사님 윤동주 시인 둘다 일본으로 가서 학업을 했던 것임
문익환 목사님은 동경 신학교에 다니셨음
이때 징집 이 내려졌고
학교 처들어가서 교장하고 단판짓고 퇴교당함
그래서 만주로 쫓겨.. (아니 전학해서 )
신학교를 졸업하고 해방후 목회자로서 삶을 이어감
그후 학업에 열중하며
장준하선생님 죽음을 계기로 뒤늦게 민주화 운동을 하시게 됨
나중에 말하겠지만 첩보 경험이 있는 문익환 목사님 덕분에
장준하 선생님 의문사를 푸는 중요한 단서를 남길 수 있었음
문성근 아저씨 아버지 짱
사족이지만 문성근씨는 아버지를 문목사라고 부름
장준하선생님 장남도 아버지라고 안부르고 장선생님 이라고 부름
이 두 아들의 호칭에서도 보여지듯
이분들의 삶은 사회에 투신한 삶 그자체였음
개인사는 없이 그래서 자식들도 아버지로 느끼기보다
선생님이나 사회 어르신 지도자로
자신의 아버지를 따랐음
아무튼
문익환 목사님은 독립운동을 하시다 해방이후에 목회자의 삶에 매진하심
그래서
먼저 장준하 선생님에 대해서 이야기 할까함
장준하 선생님 평안북도 선천에서 출생함 아버지는 목사셨음
문익환 목사님 아버지도 목사이심 문재린 목사님
윤동주 문익환 장준하 아버지들도 다 친함
이때는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쪽으로 이주하고 거점을 옮기던 시점이었음
그렇게 어린시절을 보내던 어느날
15살 소년 장준하는 시내에서 대한민국 지도를 보게됨
이 15살 소년 장준하는 그때 사랑에 빠짐
보는 순간 뛰는 심장
앉으나 서나 잊혀지지 않는 그 모습
두근두근 사랑하는 내나라
어찌보면 장준하는 최고의 로맨티스트 일지도 모르겠음
첫사랑을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서 정말 전심전력으로 사랑한 것임
그때 대한민국 지도를 본 15살 장준하는 결심을 함
그리고 사진관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대한민국 지도를 옆에 두고 사진을 찍고
난 대한민국과 결혼했다
이렇게 선언함
그래서 항상 나의 첫번째 부인은 대한 민국이라고 함
< 장준하선생님 사모님 실제로 부인은 평생 김희숙님 한분이셨음 >
이렇게 15살에 이미 나라에 투신한 장준하는
일제 강점기때 학교에서 일본어로 된 교과서로 배울수 없다고
일본교과서 찢기 운동을 주도 했고
이때 세친구 윤동주 문익환도 물론 같이함 ㅎㅎㅎ
그러다 징집명령이 떨어졌음
아예 안간 문익환
가서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려고한 윤동주
그리고 장준하는 내가 안가면 가족중 누군가 끌려가니 일단 가고 거기서 탈출을 결심함
그래서 장준하는 자원입대 라고 하고 = 강제징집 이라고 읽는다
들어가서 6개월 만에 탈출을 함
근데 그 6개월 동안도 그냥 있지 않았음 ㅋㅋㅋㅋ
학병동맹 을 만들고 그 안에서 친일파 청산을 위해 활동하고
6개월후에 일본군대에서 탈출 !!!
7개월 동안 2500km를 걸어서 중국대륙를 횡단
자그만치 6000리를 걸어
중간에 일본군을 피해다니며 위장하고 경계를 넘고 이러면서
한국 광복군에 찾아 갔던 것임
그렇게 한국 광복군에 도착한게 1945년
이때부터 광복군으로 활약을 하는데
영어를 잘하는 장준하는 미국 CIA전신이된 첩보 부대에서 활약하게 됐음
이후 부하 53명과 함께 겨울산을 넘어
임시정부로 가서 김구 선생님을 만나게 됨
그리고 장준하는 박정희가 이로 몰수도 없었음
왜냐면 장준하가 엄청나게 이들을 싫어함
엄청난 반공주의자임
조금이라도 좌파 냄새라도 나면 (실제로 아님 ) 친구고 뭐고 없이 뒤도 안돌아봄
이런 장준하 였기에
박정희는 장준하를 어떻게 할수가 없었음
박정희가 친일파로 천황에게 맹세하고 일본 장교 할때 독립운동 광복군 장교였던 장준하
해방되고 나서는
공산당 남로당출신으로 사형까지 받은 박정희와 정말 그 이를 잡아들였던 반공주의자 장준하였기에
박정희의 가장 대립점에 위치하며
치부를 들춰내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박정희를 가장 떨게한 인물이 바로 장준하였음
독립군 시절에 장준하 선생님
장준하의 해방이후 삶 그리고 그의 의문의 죽음에 관해서는
역시
투비 컨티뉴
아웰비백
장준하라는 인물은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고
나중에 가면 민주화 운동은 장준하를 중심으로 이루졌기 때문에
이분을 모르면 안되는데
현대사에서 이분의 성함을 들어 볼 수 조차 없음
왜냐고 박정희때문에
어쩌면 박근혜의 무지는 이런게 아닌가 싶음
그 작은 창으로 바라본 세상에서
평안하고 안락한 청와대안에서 바라본 세상에서는 자기 아버지가 위대해 보였겠지
자.기.에.게.만. 위대한 아버지 였음을 모른채
박정희도 차라리 덮어두지 하고 바라는 역사를 꺼내서
당당히 그 아비의 이름을 세우고자 하는건
어찌보면 순진하기까지한 무지라고 할수 밖에 없음
그 아버지는 알려지면 알려 질수록
역사의 광장에 끌려 나오면 나올 수록
그 빛을 쐬면 쐴수록
더 어둡고
더 추악하고
비겁하고 비열한 역사의 표상임
물론 우리 역시 그 부끄러운 과거를 마주 해야겠지 고통스럽지만
하지만 본인만 하려고…
그러니 박그네씨의 이번 역사 논쟁에 드는 생각은
왜이리 어리석은 짓을 하는 지 모르겠네
이것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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