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체육학자가 되짚어 본 손기정은?…한국체육사학회지 게재 논문

독일 체육학자가 되짚어 본 손기정은?…한국체육사학회지 게재 논문

아이뉴스24 2024-10-26 17:11:5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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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김동현 기자] 허진석 한국체대 교수가 한국체육사학회지(제29권 제3호)에 게재한 논문 'Carl Diem의 동아시아여행기에 나타난 KOREA 인식과 그 영향에 대한 고찰'을 통해 독일 학술취재 과정에서 발굴한 '칼 딤'(Carl Diem)의 한국 관련 기록을 소개하고 그 내용과 의미를 분석했다.

지난 1942년에 간행된 '올림픽의 불꽃' 제2권 '동아시아 여행기'에서 식민지 조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여행기 딤은 11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으며 'Korea'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는 8번째 항목은 지난 1929년 10월 15일부터 17일에 이르는 식민지 조선 체류 기록이다.

딤은 지는 1929년 11월 10일 베를린 소재의 독일 유력지 '포시셰 차이퉁(Vossische Zeitung)'에 기고한 대회참가 보고서에서도 한반도 방문 경험을 언급하고 있다.

지난 2020년 10월 28일 재개장한 손기정 체육공원 기념관 내부. [사진=연합뉴스]

독일의 스포츠 학자 겸 행정가인 칼 딤이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과 독일의 육상대항경기에 참가하는 독일선수단을 이끌고 식민지 조선의 경성을 방문했으며, 이 경험을 신문 기고와 저서를 통해 남겼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딤은 독일 현대 스포츠의 발전에 다양한 방면에서 기여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업적은 행정가, 교육인, 정책입안자 등 세 분야로 집약되며 그의 모든 활동이 독일 현대 스포츠와 체육교육, 나아가 유럽을 넘어 세계 스포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딤은 행정가로서 지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사무총장을 맡았으며,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성화 봉송을 기획하고 실현한 인물이다. 또한 1947년부터 1962년까지 독일체육대학 총장으로 일했고, 정책가로서는 독일사회체육시스템을 상징하는 '황금계획' 입안자의 한 사람이다.

이러한 인물이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경성을 방문해 국제경기에 참가했다는 사실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그가 방문 당시의 경험을 자세히 기록하여 신문 기고와 저서로 남겼다는 사실은 스포츠사의 영역을 넘어 시대적 고찰의 동기를 제공한다.

허 교수는 딤의 기록을 당대의 국내 신문 보도와 비교한 다음 그의 경험과 기록이 독일 스포츠 계에 남겼을 Korea에 대한 정보와 이미지를 유추한다. 또한 딤의 경험과 기록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에 대한 독일인들의 인식과 이미지와 어떤 연관성을 가질 수 있는지, 특히 중계방송캐스터가 언급한 'Koreanische Student'의 의미를 짚어본다.

우리 입장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당대 독일과 서구사회가 손기정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나아가 그로 인해 식민지 조선의 정치적 지형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었는지를 확인해 볼 기회라는 맥락 위에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지난 1936년 베를린올림픽 당시의 언론과 체육계 등 독일 사회는 대회에 출전한 손기정에 대해 미지의 동양인 또는 일본 선수 가운데 하나라는 평면적인 인식에 머물렀을 것으로 보아 왔다.

그러나 허 교수는 논문에서 독일 사회에 일본이 조선과 만주, 대만 등을 식민 통치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형에 대한 폭넓은 교양과 이해가 존재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 1929년 일본과 조선, 만주를 방문한 칼 딤은 훗날 저서와 신문 기고에서 각종 수치와 관찰 결과를 들어가며 한반도 주민과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드러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제국주의와 같은 눈높이와 정치적 등고선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조선과 조선인을 타자화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경성에서 열린 박람회를 일본 통치의 탁월함을 증명하는 행사로 받아들이며, 경성에서 경기에 참가한 일본의 운동선수들은 조선인들이 본받아야 할 존재들이라고 인식한다.

칼 딤의 이러한 인식은, 그가 독일 체육계와 지식 사회에서 점유하는 위상에 비추어볼 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손기정이 올림픽에 참가한 1936년은 칼 딤의 동아시아 여행 이후 7년이 지난 시점으로서 독일 사회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판도 아래에서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 더욱 구체화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그것을 확인하고자 한 손기정의 노력과는 별개로, 독일 사회는 일본제국의 일부로서 식민지 조선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손기정이 그 지역 출신의 선수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논문은 당시 독일 언론의 보도 등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중계한 독일 아나운서가 손기정을 'Koreanische Student'라고 지칭한 것은 독일과 서구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동아시아와 식민지 조선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할 뿐이어서 새삼스러운 발견이나 진실의 고백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허 교수의 시작이다.

허 교수는 이 같은 결론이 손기정의 애국심이나 민족의식에 대한 의구심과는 무관하며, 그에 대한 연구가 답습해온 '망국의 설움' '일제에 대한 저항'의 틀에서 벗어나 손기정을 세계 스포츠와 올림픽 역사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재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환기한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또한 지난 1936년에 세계 최고의 마라톤 선수가 식민지 조선의 경성에서 활동하고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이해의 영역은 슬픈 시상식과 일장기 삭제 사건에 머무르며 학술 연구도 '민족정신'과 '애국심'의 패러다임을 탈피하지 못하는 현실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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